양성미·가수 러피, 빚내서 소극장 마련
생활비 마련 위해 또 은행 문 두드려

가수 양성미씨와 러피씨.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서 노래도 부르는 양성미씨와 러피씨는 지난 2014년부터 활동했다. 공간 없이 떠돌다시피하다 지난 2018년 크게 마음을 먹고 1억원을 대출받아 제주시에 소극장을 마련했다. 꿈에 그리던 공간인지라 애착이 가서 꾸미는데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2019년 봄 문을 열고 마무리 작업을 한 뒤 지인들을 초대해 소극장 개장을 축하 받았다. 이후 틈틈이 콘서트도 열고, 앨범도 녹음했다.

그러나 2020년 봄이 오기도 전에 난데없이 ‘겨울방학’을 맞았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방학이었다. 관공서가 주관하는 축제와 공연은 줄줄이 취소됐다. 개인적인 공연은 할 수 있었지만 ‘이 시국에 무슨 공연이냐’라는 시선 때문에 홍보조차 할 수 없었다. 종종 소극장에서 통기타를 연습하던 동아리 사람들도 발길을 끊었다.

양씨는 “그나마 지난해 어린이날 소극장 마당에서 방역지침을 지키고 거리도 떨어뜨려서 공연을 했다. 적극적인 홍보도 어려워서 지인들에게만 연락해 공연을 했는데 찾아준 분들 만족도가 높았다”며 “그 이후론 단 한번도 오프라인 공연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연을 해야 공연 관계자, 기획자, 엔지니어들이 움직일 수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모든게 멈췄다. 문화 예술인들이 택배기사, 현장 건설 노동자 등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씨는 지난해를 ‘죽지 못해 살았던 해’라고 규정했다. 양씨는 “2020년 초반에는 시간이 많아져서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가,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예술 활동을 하면서 계속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실제 주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손을 놓고 떠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며 “하반기에는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여러가지를 도전하고 현재까지 적응 중이다. 근데 여전히 적응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2019년엔 한 달 평균 1~2개의 공연, 프로그램, 행사를 했다. 하지만 2020년 1년 동안 단 2개의 행사만 했다. 양씨는 “우리 스스로 야외 공연을 기획해서 무대에 오른 경우는 있었지만 누가 불러줘서 공연을 다니는 경우는 없었다. 이젠 섭외가 된다는 기대감은 없다. 관공서에 의존하던 행사 기획팀들은 지난해 제주도의 예산 삭감에 따라 아무것도 못했다”고 말했다. 러피씨는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가의 장비를 구매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자 이혼위기에 처했다는 말도 들린다”고 부연했다.

2020년 제주도가 제주문화예술재단(재단)을 통해 문화예술인들에게 지급한 보조금을 두고 이들은 지급기준과 형평성이 매우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양씨는 “지난해 재단에서 기금을 얼토당토않게 지급해서 답답함이 들었다. 미술계가 가장 힘들었을텐데 이 분들에게 짧은 기간에 1억원을 사용하라고 보조금을 지급한다면 과연 쓸 수 있겠나. 재단이 계획 없이 마구잡이로 예산을 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양씨는 “2021년이 됐다고 밝아 보이는 게 없다. 예술인들에게 1, 2, 3월은 보릿고개다. 이 기간엔 사업도, 행사도 없어 수입이 전무한 시기다. 그런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지난해 코로나19를 겪고 나니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 올해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공연은 할 수 있을까”라고 한 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장애인들을 위한 문화교육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과 함께 음악수업을 하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업을 하지 못할까 걱정이다. 양씨는 “발달장애인 분들은 코로나19 때문에 나오지 못해 사실상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수업 일정을 잡아 놓고 계속 미루다 결국 해를 넘겼다.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힘들지만, 특히 장애인 분들은 코로나블루를 문화로 해소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걱정이 크다”며 “몇 명이라도 초대해 방역수칙을 잘 준수하고 띄어 앉아서 공연하는 방법이 허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2월 시작된 코로나19가 제주4ㆍ3추념식도 대폭 축소시 킨 터라 상반기에 예정된 행사는 줄줄이 취소돼 도내 행사대행 업체들은 울상을 지었다. 이금재 일로와제주 대표는 “일로와제주를 믿고 일을 맡겨준 고객들 기대 때문에 행사를 준비했다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각종 축제 및 행사가 취소됐다. 상반기에는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떨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코로나19로 상반기엔 지옥을 맛봤 다”며 “직원들 월급을 줄 돈이 없어 대출을 받아 회사를 꾸려갔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로와제주는 하반기에 집중된 공공기관 사업으로 회의감을 느꼈다. 직원 한 명당 맡은 행사가 15개였던 만큼 피로도가 높아졌고 창의적인 사업을 해내기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가 지금과 같은 사업 방식과 방향의 ‘지속 불가능’을 깨닫게 해줬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기관 대행사업을 주로 하다보니 지난해에는 직원들이 유독 힘들어 했다. ‘이 방식이 지속 가능한가’라는 근본적 고민이 들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직원들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일이 있다는 건 감사하고, 대행 사업을 통해 제주지역에 좋은 변화가 일어나면 좋지만, 관계 당국은 예산 쓰기에만 급급한 사업이 많다는 걸 느끼고 있다”며 “‘우리가 돈을 써주기 위한 기업’인가 라는 회의감도 들었다. 이런 방식은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와 비슷한 기업이 나올 것이 분명한 만큼 변화를 빠르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우리에게 들어온 사업을 심사숙고해서 결정하거나,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야하는 경우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며 “지속가능하고 지금보다 더 생산적인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이금재 대표는 코로나19가 생존전략을 보다 더 빨리 변화시켰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일로와제주는 공공기관에 의존하는 비율을 점점 줄이고 20~30대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중문농협의 스마트스토어 온라인 창구를 개설했고, 올해는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어촌계 해녀들이 채취한 뿔소라를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에는 행사 대행사 역할에 중심을 뒀다면 앞으로는 보다 주체적인 사업을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일로와제주가 문을 연지 10년이 지났지만 작년만큼 오랜 기간동안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며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가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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