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에 걸맞게 한글맞춤법에 대한 검토 필요”

현 정 석

경영정보학과 교수

한글은 말소리를 담는 문자로서 표음주의 원칙을 지킨다.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는 한글이 닭울음 소리까지 표기할 수 있다고 자신감 있게 썼다. 소리대로 적을 수 있는 한글은 개별 글자를 적는데 효과적이다. 한글은 한국어의 특성으로 인해 영어보다 컴퓨터 처리가 어렵다. 영어는 모두 다 띄어 쓰지만 한글은 ‘은’ ‘는’ ‘이’ ‘가’ 조사가 붙어서 나온다. 어떤 조사를 썼느냐에 따라 말의 의미가 달라진다. 한글은 단어와 단어가 결합될 때 발음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한글 맞춤법>은 단어와 단어가 결합될 때 ‘사이시옷’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규칙을 정했다. 사이시옷을 사용하게 되면 영어 단어와 일대일 대응이 되지 않아 번역이 틀릴 가능성이 커진다. 구글 번역기에 한국어→영어 번역을 시키면 도맷값(Domat value), 등굣길(Back road), 학굣길(Hakjeong-gil)로서 잘못된 결과가 나온다. 한글 맞춤법 중에서도 사이시옷 표기는 꽤나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일상 언어생활에서 혼란스럽게 쓰이는 표기이다. ‘전세방’은 그대로 쓰면 되는데, ‘전셋집’은 사이시옷을 써야 한다. ‘셋방’, ‘찻간’에서는 사이시옷을 적지만, ‘전세방’, ‘기차간’에서는 사이시옷을 적지 않는다. 사이시옷 표기에 관한 표기 규정은 공무원 국어시험에서 난이도가 높은 문제로서 자주 출제될 정도로 어렵다. 컴퓨터 인공지능 시대에 컴퓨터 처리가 용이한 한글 맞춤법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한글의 경우에 ‘사과(어간)’ + ‘를(접사)’일 때는 ‘사과’가 목적어가 되지만, ‘사과(어간)’ + ‘가(접사)’일 때는 ‘사과’가 주어가 되어 문법적 기능이 달라진다. 김훈은 소설 「칼의 노래」 의 첫 문장에서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를 두고 오래 고민했다고 한다. ‘은 는 이 가’ 조사에 따라 말의 의미가 천양지차로 달라지는 것이 한글이다. 숫자 0.5의 점은 소수점이고, “…하였다.”의 점은 마침표이다. 하나의 점이 두 개의 뜻을 가지면 컴퓨터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컴퓨터는 자판의 기호와 컴퓨터 내부의 숫자 코드 간에 일대일 대응을 시켜 자료를 처리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는 문장의 마지막에 마침표 점 대신에 세미콜론(;) 부호를 즐겨 쓴다. 

한글 맞춤법에서 사이시옷에 관한 표기 규정은 예를 들어, ‘맥주병’은 한자어+한자어인 경우에 해당하므로 사이시옷을 쓰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마구간’이 맞다. 이와 달리 ‘맥줏집’은 한자어+고유어인 경우에 해당하므로 사이시옷을 써야 한다. 그래서 ‘만화가게’가 아니라 ‘만홧가게’가 맞다. 마찬가지로 ‘산봇길’ ‘최젓값’ ‘구굿셈’이 맞다. ‘한자어+한자어’로 이루어진 단어보다 ‘한자어+고유어’인 단어일수록 오류율이 매우 높다. 사이시옷에 관한 오류율이 높은 이유는 현행 한글 맞춤법 규정들이 서로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한글 맞춤법은 사잇소리 현상이 발생하는 ‘한자어+한자어’의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허용하지 않지만, ‘한자어+고유어’의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표기할 것을 요구한다. 

2014년에 13세~69세의 남녀 1,025명을 대상으로 맞춤법에 관해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는 사이시옷 표기 오류가 31.9%로 나타났다. 2위를 차지한 용언의 어간과 어미의 구별은 10.2%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18.2%가 사이시옷 표기 규정이 어렵다고 답했다.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다른 연구는 국어학자, 언론인, 출판인, 교사, 정책가의 전문가 54명을 대상으로 사이시옷 표기 규정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전문가들의 응답결과는 사이시옷 규정을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대답이 28.3%였지만, 수정이 필요하다는 대답은 60.4%로 두 배 이상 높았다. 사이시옷 표기를 개선할 여지가 많다. 

한글 맞춤법은 가독성을 높여 독서 능률을 높이는 문제뿐만 아니라, 언어정보화, 국제표준화, 인공지능 자동화 등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글 맞춤법 규정은 실제 생활에서 사용이 쉽고 정확하며 편리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게 한글 맞춤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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