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역에서는 화전문화 복원에 최선… 제주도도 화전·화전민·화전문화 연구가 제대로 이뤄져야"

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

“우리 제주인은 화전민의 후예인 셈이요, 또 화전민의 피가 우리의 핏줄 한 가닥에 흐르고 있다고 봐도 망언이 아닐 것이다. 화전이야 말로 아무런 꺼릴 것도 구애받을 일도 없는 순박하고 무구(無垢)한 착하디착한 자연인 그대로의 삶이었다.”

소농(素農) 선생은 제주농경문화의 뿌리가 화전이며 모든 제주인은 다 화전민의 후예(後裔)라고 주장한다. 그는 예전 화전민의 삶을 ‘무위이화(無爲而化)’로 함축하고 있다. “씨 뿌려 얻어지면 다행이요, 얻지 못해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고 원망할 이유도 없었다. 화전에 씨 뿌릴 때는 꼭 얻어지기를 바라서 뿌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가을에 곡식 한 알의 수확이 없어도 걱정거리가 될 수 없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제주목 건칭연혁조(建治沿革條)에 의하면,  제주도 개척은 화전 농업을 중심축으로 이뤄져 왔다. <고려사고기(高麗史古記)>를 보면, 제주도 주민들이 농업정주가 이뤄지고 촌락이 형성된 뒤 촌락주변에 농경목축지가 분포하고 있다. 촌락주변 농경 목축지가 어떻게 경영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경목교체방식(耕牧交替方式)으로 이뤄져 왔으며 당시 토지이용 역시 경목교체방식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고려시대 목장설치가 제주도 화전발생 요인으로 생각된다. 1274년 삼별초군을 진압한 몽고는 제주에 목장을 설치했다. 한라산 중턱을 돌며 국영목장이 설치됨으로써 목장지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제주도 전역을 방목지로 경영함에 따라 도민식량 확보에 대한 우려가 심해졌다. 그래서 조선 세종 때 한라산목장과 구목장을 풀어 경작하도록 했다. 넓은 지역을 필요로 하는 방목중심 경영은 인구증가와 그로 인한 식량 확보차원에서 반드시 농경지화 정책을 수반해야 한다.

19세기 본격적으로 중산간의 목장전과 화전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원래 중산간 지대는 국마를 양성하는 목장이었으므로 경작이 금지되었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 공식적으로 목장전과 화전경작이 허용됐다. 이로 인해 19세기 중반부터 화전을 개간하러 중산간으로 이주하는 도민들이 늘어나 화전동(火田洞)이 형성됐다.

1899년 <제주군읍지(濟州郡邑誌)> 중 ‘제주지도(濟州地圖)’에는 목장의 상잣성 위쪽 여섯 군데 화전동이 표시돼 있다. 지도 뒤 읍지 본문에는 화전세(火田稅)를 수세하던 기록이 있어 산장(山場)이 있던 곳에 화전촌이 형성돼 있었으며 이들을 상대로 세금을 거두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1895년 공마제도를 폐지하고 국영목장을 방치하기보다 목장 내 화전경작을 허용하는 대신 화전민들로부터 화전세를 징수했다. 

‘강제검의 난’과 ‘방성칠의 난’은 화전세의 과다 징수가 원인이 돼 발생했다. ‘방성칠의 난’은 봉세관(捧稅官)의 조세수탈과 천주교 교폐(敎弊)에 맞선 ‘이재수의 난’으로 이어졌다. 강원도 등 다른 지역 화전은 1970년대 화전정리사업 때까지 존속됐다. 그러나 제주도 화전은 도일(渡日)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화, 해안마을의 경제활동기회 증가, 농업경영방식의 변화 등으로 인해 1930년대 급격히 소멸됐다. 이후 ‘제주 4·3’을 혹독하게 거치면서 사라졌다. 잃어버린 마을이라는 영남동, 동광리, 무등이왓, 삼밭구석, 와흘리, 원동, 다랑쉬마을 등이다.

지금도 교래, 선흘, 영평, 용강, 삼의악 부근, 방성칠이 전라도 동복면에서 건너와 화전 농사짓던 오라 능화마을, 봉성리 위 화전동, 상천리, 광평리 일대, 중문동 위 상문리, 녹하지악 부근, 영남리, 동홍동 굴왓, 미악산 부근 연적골, 석수밭, 쇠물도, 서홍동 생물도, 시오름 옆 삼거리, 호근동 각수바위 근처, 위미리 산간 종정굴, 한남리 산간, 가시리 안좌름 등 곳곳에 화전마을 흔적이 남아 있다.

타 지역에서는 체험장을 만들고 화전문화를 발굴 복원하는 노력을 오래전부터 해 오고 있다. 제주에는 화전에 대한 기초 연구조차 드물다.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거듭 강조하건데, 제주근대사 연구의 키워드는 바로 화전이다. 제주도 화전·화전민·화전문화 연구가 제대로 이뤄져야 제주근대사 정립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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