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대학생이 고등학교 시절이 더 나았다고 푸념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고등학교 생활은 선생님과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었는데, 대학 생활은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하는 고민의 시간이 대부분이라고 하였다. 누군가 대신 결정을 내려주면 좋겠다는 농담 아닌 진담이 담긴 학생의 눈빛이 뇌리에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모든 순간이 선택의 문제임을 알게 되고, 세상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음도 여실히 느끼게 된다. 어쩌면 나이를 더한다는 것은 선택을 더한다는 의미가 되고, 나이의 무게만큼 세상이 더 큰 짐을 지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젊은이의 삶이 참 팍팍하다. 입시지옥의 터널을 헤쳐 나오면 그 해방감을 누릴 여유도 없이 다시 취업 전선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고, 토익과 자격증 등 요건을 갖추고, 휴학도 마다하지 않으며 무서울 만큼의 경쟁률을 뚫고 인턴 등 취업 연계 활동을 이어간다. 그 이후라고 어디 쉬운 관문일까. 정규직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원하는 만큼의 성취를 이루기란 참 요원한 일이다. 그러니 좌절하고 힘에 겨워 주저앉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고, 세상에 내 조그만 자리 하나 없다고 원망의 마음이 드는 순간도 생긴다. 때때로 나를 괴롭히고 세상을 탓하기도 한다. 

그레타 툰베리라는 소녀가 있다. 유엔에서 연설을 하고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설전을 벌이는 모습이 각인되어 있지만, 이 소녀의 시작은 작은 호기심과 의심에서 시작되었다. 굶주린 북극곰·가뭄과 홍수 등 기상이변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만, 각 정부와 어른들은 말뿐인 환경보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녀의 실천은 매주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에 참여하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거대한 변혁에서 시작되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세상을 탓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작지만 명확한 집념과 꾸준한 실천이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눈을 감아버리면 세상의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 최근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보면서 1987년 민주화 이전의 대한민국을 생각하였다. 우리가 독재와 압제의 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시절을 이겨낸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망과 두려움을 극복한 신념에 있었다. 우리는 ‘나 혼자쯤 눈을 감는다고 뭐 어때’라는 방관에서 벗어나 ‘나 혼자의 힘이라도 보태겠어’라는 깨어 있는 힘이 모여 ‘민주’라는 결과물을 누리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자기의 세상을 가꿔갔으면 한다. 남이 설정한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시대에 눈감지 않으며 기존의 세상을 바꾸어 갔으면 한다. 젊음은 깨어 있는 정신이어야 하고, 시대에 눈을 감지 않는 냉철함이어야 한다. 

커다란 변화도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고, 작은 힘들이 모여 시대의 변혁을 이룬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서 동력을 찾고, 멈추지 않고 도전하다보면 자신의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환희와 때로는 절망을 주는 세상일지라도, 자기가 가꾸는 세상은 온전히 자신의 세상이다. 그 세상이 젊음이 주는 기대와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빛날 수 있기를, 선택과 도전 속에서 누구나 그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