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이

컴퓨터공학전공 3

내가 우리 집 옥상에서 텃밭을 일구기 시작한 건 한창 대파 값이 치솟았을 때였다. 유튜브에는 대파 키우기 영상이 수없이 올라왔고, 내 친구들도 하나 둘 대파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 유행에 편승하고자 모종가게에서 대파 씨앗 몇 개를 사왔다. 키우기 쉽다는 모종가게 아저씨의 말에 상추를 포함한 채소 씨앗 몇 개도 샀다. 인터넷에서 대형 화분을 주문했고, 식물 영양제에 혹시나 싶어 친환경 살충제도 구매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끝에 마침내 씨앗을 심었고 새싹의 소식을 기다렸다. 

며칠 후 화분 곳곳에서 아주 작은 새싹이 솟아났다. 씨앗이 워낙 작아 심을 때만 해도 과연 이런 게 싹을 틔울까 걱정했는데, 내 걱정이 무색하게 씨앗은 싹을 틔우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 갔다. 심지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발아율도 높아서 싹들은 금세 화분 전체를 점령했다. 이대로는 식물이 잘 클 수 없을 것 같아 큰 화분을 하나 더 준비하고 일부 싹들을 옮겨 심었다. 

노력에도 늦은 파종 시기가 문제였는지 유독 모질었던 이번 장마가 문제였는지 채소들은 힘없이 죽었다. 장마가 끝날 때 살아남은 건 상추들뿐이었다. 싹이 틀 때만 해도 식물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놀랐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죽어버릴 정도로 식물들은 연약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상추들의 상태를 살피고 힘이 없어 보이는 개체들을 찾아다니며 정성껏 돌봤다. 돌보던 개체가 나아지면 또 약해보이는 개체를 찾아다녔다.

상추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 수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밭에서 갓 수확한 채소를 씻고 다듬고 요리하는 과정 역시 새로운 경험이었다. 갓 수확한 채소가 얼마나 달고 신선한 맛을 내는지 여태 알지 못했다. 수확한 상추는 우리 가족이 다 먹고도 남아 이웃들에게도 나눠드리며 오랜만에 안부인사도 드렸다. 좋아하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니 기뻤다.

식물을 키우는 일은 정말 관심과 정성이 많이 든다. 당시 내 일과는 내가 돌보는 상추와 관련된 일들로만 가득 찼다. 하지만 번거롭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텃밭을 일구며 나는 작은 식물들이 가지는 굉장한 에너지를 알게 되었고 생명을 돌본다는 책임감도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물을 주고 직접 장갑을 끼고 벌레를 잡고 썩은 잎을 솎아 내는 일을 하며 나는 행복을 느꼈다. 나의 관심이 필요한 존재를 돌본다는 사실이 마냥 즐거웠다.

만약 일상 속에서 작은 기쁨을 얻고 싶다면 식물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돌봄의 기쁨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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