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대학원생의 시간표 <5> 류진옥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수료생

류진옥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수료생)씨

제주대학교에는 '1만아라'라고 부르는 학부생들과 더불어 약 2000명에 가까운 대학원생들도 캠퍼스를 누비고 있다. 일반대학원을 포함해 10개 대학원에서 각자 전공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들은 전공처럼 나이도 이력도 목표도 생활 반경도 다양하다. 그래서인지 대학원생의 존재는 좀처럼 학내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이번 기획에서 대학원생들의 시간표를 물으며 그들의 처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편집자주>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류진옥 씨(52,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수료생)는 제주도로 건너와 제주의 무속 신앙에 관심을 가지면서 40대 중반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교 밖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다 주변의 권유도 있고 학교에 적을 두는 것이 연구자로 지내기에 낫다는 생각에 2015년엔 국문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하고, 2018년엔 한국학협동과정으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학교에서 전업 대학원생에 대한 지원도 저조한 현실에 세 학과(국문학과·사학과·사회학과)가 모인 ‘협동과정’에서 학위 과정을 이수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수료를 하고 나서는 학교 시설과 서비스도 제한적으로 이용하게 되면서 논문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가중됐다.

동료들도 늘어나고 분위기도 좋아지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틈나는 대로 목소리를 내면서 도서관 접근이나 인문대학 내 대학원생 연구실도 생기긴 했지만 더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자기소개를 해달라.

2015년에 제주대 국문과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2018년에 한국학협동과정으로 박사과정에 들어왔다. 갱년기와 싸우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학부 전공과 대학원 전공이 같은가? 대학원 진학 계기가 궁금하다. 

학부 전공도 국문학이다. 민속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국문학과로 진학했다. 2010년에 제주도로 이주하면서 다시 관심을 가졌다.

2011년에 제주큰굿이 열릴 때 몰래 들어가서 기웃댔다. 언저리를 배회하면서 굿을 참관했다. 내가 이 굿을 보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전율을 느꼈다.

그 자리에서 관련 공부하는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공부 모임에 참여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 인연으로 제주학연구소에서 무속과 신화, 의례에 관해서 여는 공부모임에 참여해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학원에 가지 않으면 연구자 그룹에 들어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고 학위보다는 공부를 한다, 혹은 적을 둔다는 의미가 있었다. 학회에 뭘 발표하려고 해도 어디에 소속이 되어있는 것이 필요했다. 어차피 공부할 거라면 학교에 다니는 건 괜찮다는 조언도 있었다.  

▶‘협동과정’의 장점, 단점을 꼽자면?

한국학 협동과정은 국문학과, 사학과, 사회학과가 연계해 개설됐다. 학제간 연구 활성화라는 좋은 취지로 생겨났는데, 10년이 지나가서 보니 제도로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취지가 유지되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특히 한국학 협동과정을 개설한 교수님들이 퇴직하기 시작하고 졸업생이 누적되다 보니 이런 것들이 눈에 띈다. 세 학과의 수업을 골라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단점도 여기에서 비롯한다.

개설돼있는 수업이 한정적이고, 별도의 커리큘럼에 의해 개설된 수업이 아니라 기존의 수업에서 연관이 있는 수업을 수강한다. 더불어 학생이 학교 안에서 지원되는 과정에서 커나가야 하는데 ‘과정’이기 때문에 학교의 지원이 거의 없다. 학위를 이수하고 전문적인 연구자로서 학교 내에서 터전을 만들거나 정착을 기대할 수가 없다. 학부가 없으니 강사로라도 수업을 맡기도 어렵다. 그러면 외부 연구소로 눈을 돌려야 하는데 인문사회계열이 형편이 쉽지만은 않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속 공부하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에게는 찾기가 어렵다.

▶세 학과의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무엇이었나?

국문학과 제주 4·3과 오키나와 문학을 다뤘던 수업과 사회학과 수업인 4·3연구다. 제주 신화를 다루는 과목은 대학원에서 개설되는 과목이 그리 많지 않고, 또 학교 밖에서 할 수 있는 공부들도 있지만 이 수업들은 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면 듣기 어려웠을 수업이었다. 학교에 온 보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시야를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수료생의 애로사항은 특히 어떤 것들이 있는지? 보완됐으면 하는 점은?

학위논문 심사청구 기준이 수료 후 7년 이내이다. 그게 학칙이라면 그에 따라서 다른 연한도 같아야 하는데 들쑥날쑥하다. 수료연구생, 도서관 이용, 주차 등록 등등 다 다르다. 도서관 이용은 수료하자마자 일반인 신분으로 이용해야 했었다.

오히려 논문 준비하면서 가장 필요한 처지인데, 그래서 우리가 면담을 신청해서 수료연구생도 도서관 이용을 할 수 있게 된 거다. 나처럼 공부만 하겠다고 온 사람은 정말 갑갑하다. 도서관이나 자료 접근에 대한 요구도 여기저기 해왔다. 도서관에 있는 자료들도 전문적인 자료들은 아주 많지 않다. 제주 관련 자료를 제주대학교에서 다 갖고 있지 못해서 개인 연구자들이 알아서 찾아야 하는 게 아쉽다. 수료생도 수료생이지만 전업 대학원생의 애로사항도 많다.

우선은 자료 접근하는 게 어렵다. 그나마 RISS에서 다른 학교 소장 자료를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긴 한데 없는 자료도 많다. 더군다나 우리는 제주 자료실에 있는 자료들을 봐야 하는데 대출이 안 된다. 자료 보전 때문에 그러는 건 이해한다.

그렇다면 인문대학 차원에서 관련 자료를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별도의 열람실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공간 문제도 심각하다. 인문대학만 놓고 보면 작은 세미나실에 아무 기자재도 없이 조그만 공간을 이용한다. 인문대학 내에 대학원생 연구실이 최근에 생겼는데, 그것도 우리가 필요하다고 몇 번 요구를 한 결과다. 원생들이 많아져도 이용할 공간이 없고 특히 나 같은 수료생은 더더욱 그렇다. 

▶최근에 가장 고민인 것은 무엇인가? 동료 대학원생들과는 주로 어떤 고민을 나누는가.

예전엔 ‘박사를 받으면 뭐하지?’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해본 적은 없었다. 공부를 하겠다는 걸로 충분했다. 그런데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쓸모가 없는 걸 왜 이 고생을 하면서 논문을 써야 하는지 자꾸 타협하려는 괴로움이 생겼다. 그러다 최근에 초심으로 돌아가자, 아무 생각하지 말고 매진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나마 원생들도 늘고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연령층도 어려지고 다양한 방면의 사람들이 오고 있다. 그러면서 학문적인 교류나 그에 대한 욕구도 높아지고 있다. 학생들의 열의나 면학 분위기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관심 분야에 따라서 스터디 모임을 한다거나 가벼운 독서모임도 하고, 또 주제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소논문 발표 모임도 한다. 원생들끼리 알아서 서로 돕는다. 

▶연구 주제는 무엇에 관한 것인가? 

석사 학위 논문은 ‘제주도 조상신본풀이의 형성과 전승’에 관한 것이었다. 제주의 조상신은 특별하다. 그런 신앙은 전국 각지에 어디에나 있지만 본풀이로 남은 지역은 제주뿐이다. 그 신화도 중요하고 신앙도 중요하다고 본다. 박사학위 논문은 석사학위 논문을 확장해서 제주 조상신 신앙을 다루려고 한다. 제주도 지역 내에서 조상신들이 지역별로나 어떻게 전통이 다른지, 아직 다니는 신앙민들. 전에는 신화였다면 이번엔 신앙으로 조상신에 관한 것을 보고 있다. 

학위를 받고 나서 하고 싶은 작업은 무속 신앙의 현재적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것이다. 요즘엔 굿도 더더욱 하지 않게 되면서 예전 자료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고민이 든다. 굿이 줄어들고는 있어도 신앙은 여전히 유지된다는 것은 민중의 삶에서 그 중요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무속 신앙이 갖는 의미를 발견하고 확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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