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12년간 줄다리기 벌인 국방부, 10월 중 실무협의체 구성키로

격납고에 일본 주력 전투기인 제로센(零戰·영식함상전투기) 모형이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 알뜨르비행장에 추진 중인 ‘제주평화대공원’ 조성 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

송재호 국회의원과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9월 6일 국회에서 제주평화대공원 조성 사업을 위한 부지 무상사용에 대해 논의했다.

국방부는 그동안 제주특별자치도가 요구해 온 부지 무상사용에 대해 10월 말까지 실무협의체를 구성, 세부적인 사항을 협의하기로 했다.

앞서 제주도는 세계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핵심 사업으로 알뜨르비행장에 748억원을 투입, 평화를 테마로 한 제주평화대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2009년 제주도와 국방부는 이곳 부지를 지역발전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협약을 체결했다.그러나 전체 부지(185만㎡)의 91%(169만㎡)를 소유한 국방부는 12년째 무상양여에 난색을 보였다가 최근 전향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일제가 구축한 최대의 군사시설

일제가 제주도에 구축한 최대의 군사시설은 알뜨르비행장으로 꼽힌다.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 185만㎡ 부지에 조성한 이 비행장은 1945년 8월 태평양전쟁 종전 전까지 확장 공사가 이뤄졌다.

현재 격납고 19개(등록문화재 39호)와 지하터널(312호), 섯알오름 동굴진지(310호), 고사포진지(316호)가 전쟁유적으로 남아있다.

일제의 보고서에 따르면 1932~1933년 대정읍 상모리 6개 마을의 토지를 강제 수용, 19만8000㎡ 규모의 비행장을 건설했다. 특이한 점은 항공기지가 아닌 ‘임시 착륙장’을 조성한 것이다.

연료 보급을 위해 비행기 임시 착륙장을 설치한 이유는 중일전쟁에 대비한 사전 포석이었다. 임시 착륙장은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침공을 목적으로 한 항공기지로 변모했다. 알뜨르비행장은 바다를 건너 중국을 공습하는 ‘도양(渡洋) 폭격’의 구심점이 됐다.

나가사키에 있던 오무라(大村) 해군항공부대가 주둔하면서 면적이 185만㎡로 확장됐다. 해군 보고서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농경지를 3개월 만에 모두 매입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강제 수탈을 한 셈이다. 1937년 8월 이곳에 파견된 비행단 장교인 이와야 후미오는 경험담을 책으로 펴냈다.

국민당 정부가 있던 난징을 비롯해 남창을 공습한 폭격기들의 귀환을 맞이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는 공습을 마친 폭격기들이 다음 날 다시 난징을 공격할 수 있도록 빠른 시간 내에 정비를 마쳐야 했다고 회고했다.

알뜨르비행장에서의 난징 폭격은 총 36회로 연간 600기의 항공기가 동원됐다. 

1937년 11월 일제가 상하이를 점령하면서 오무라 항공대는 본거지를 상하이로 옮겼다. 이후 알뜨르비행장에는 훈련생을 양성하는 연습 항공대가 들어섰다.

해군 ‘96식 중형폭격기’ 대신 날개가 두 개 달린 복엽기인 ‘아카톰보’(일명 빨간 잠자리) 연습기가 들어왔다. 

◇미군에 비행장 뺏기면 역공을 당하는 ‘양면의 칼’ 됐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알뜨르비행장은 더욱 확장됐다. 특설경비 공병대가 배치돼 동굴진지와 고사포진지가 구축됐다. 비행장 인근에 화약창고, 병사, 목재·금속 공장, 발전소가 들어섰다.

미군 폭격기 B29를 요격하기 위해 일본 한신에 있던 제56비행전대가 이곳으로 이전했고, 사세보의 해군 951항공대 일부가 배치됐다.

1945년 8월 패전이 짙어진 일제는 제주도를 미군 상륙의 방어기지로 삼았다.그런데 본토 사수작전(결 7호)을 수행하는 육군 입장에서 해군이 조성한 알뜨르비행장은 ‘양면의 칼’이 됐다. 비행장은 미 군함의 함포 사정거리 내에 있었다. 더구나 비행장을 미군에게 빼앗기게 되면 일본 본토를 공격당할 수 있는 전진기지로 제공하게 될 상황에 놓였다.

전쟁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12년 동안 대규모 비행장과 동굴진지를 건설하면서 주민들의 희생이 따랐다. 대정·안덕·서귀포 주민들이 동원돼 하루 종일 삽과 곡괭이를 들고 고된 노동을 했다. 

마을별로 인력 동원이 할당됐고, 도주를 한 주민에게는 심한 체벌이 가해졌다.

지금까지 잘 보존된 견고한 격납고는 강제 노역에 동원된 주민들이 시멘트와 자갈, 모래를 지고 나르면서 구축한 것이다. 

‘알뜨르비행장-일본 해군의 제주도 항공기지 건설 과정’에 대한 책을 펴낸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조성윤 명예교수는 과거에 일본 방위청을 방문, 관련 문서를 수집하고 현지 조사를 벌여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조 교수는 알뜨르비행장에는 정사각형 모양의 넓은 잔디밭이 활주로 역할을 대신했다고 밝혔다.

당시 프로펠러 비행기는 바람에 따라 착륙 또는 이륙하는 방향을 수시로 바꿔야 했다. 비행기가 사방에서 뜨고 내릴 수 있도록 정사각형 모양으로 활주로가 설치됐다.
조 교수는 “알뜨르비행장의 활주로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격납고 앞 넓은 잔디밭이 천혜의 활주로였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이어 “알뜨르비행장과 같은 옛 전쟁유적은 전쟁 당사국인 일본에도 없다”며 “그래서 제주평화대공원으로 조성해야 할 타당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