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 것 같지만, 소중한 찰나의 선의
매 순간 화양연화에서 행복의 열매 따 먹길
스스로의 결점 통해 학생들의 취약함 이해

>> 슬기로운 교수생활 < 2 > 이소영 사회교육과 교수

이소영

사회교육과 교수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별것 아닌 선의>는 경향신문에 3년 반가량 연재한 칼럼 원고들을 토대로 한다. 칼럼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골똘하다 문득 엉뚱한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오래전에 힘든 일이 있어 길에서 울었던 기억이다. 

무턱대고 택시를 잡아타고 “명동성당 가주세요” 한 후 다시 울었다. 기사님이 뒷좌석을 보시더니 듣던 <최양락의 재미난 라디오> 볼륨을 줄이고, 채널을 돌려 클래식 FM을 틀어주셨다. 그걸 들으며 울음이 스르르 잦아들었다. 

당시 뭐가 그렇게까지 힘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울던 승객을 위해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를 희생하고 성모의 노래를 함께 들어주셨던 기사님의 마음은 기억한다. 이렇듯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불완전하지만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찰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선의’와 ‘별것 아닌 선의’의 차이는.

‘선의’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거대하고 숭고한, 지속가능한 무언가를 떠올린다. 하지만 인간은 항상 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맥락에서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었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러지 못할 수 있다. 

특별히 선하거나 자비롭지 않은 한 인간에게서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어진 ‘별것 아닌 선의’는 그럼에도 소중하고,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고 믿고 있다.

▶제주대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책 후반부 ‘하나 더 통과하는 중’이라는 제목의 글에 담긴 이야기다. 각별했던 이들과 오랜만에 만나고 돌아오던 길에 이 관계가 차츰 멀어질 것을 예감하며 슬퍼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 다음날에는 친한 동료와 이야기하고, 웃으며 농담하기도 한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마음에 남은 건 ‘매끈하고 예의 바르게 멀어질’ 것에 슬퍼한 순간이 아닌, 그 후에 사소하고 시시한 웃음들이다. 

어두운 터널 끄트머리에서야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그 터널이야말로 찬란했고, 그리움에 뒤돌아보던 머리 위로 반짝이는 순간들이 하늘의 별처럼 가득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같다. 우리 학생들도 ‘이게 끝’이라는 생각이 드는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근거리며 기다릴 무엇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 것만 같아도 저마다 아름다운 시절을 하나 더 통과하는 중일 수 있다. 매 순간의 ‘화양연화’에서 행복의 크고 작은 열매들을 따 먹으며 걸어가면 좋겠다. 

▶앞으로 어떤 교수님이 되고 싶은지.

학생들에게 위엄 넘치는 역할모델이 돼주지 못할 것을 안다. ‘카리스마’라는 단어만큼 나와 안 어울리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바람이 너무 커 도리어 경직된 채 행동하고, 인사할 타이밍을 놓쳐 전전긍긍하다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이테를 더해가고 선생이 된 지금도 이따금 부지불식간에 그런다. 하지만 그 결점과 빈틈 덕분에 학생들의 비슷한 결점과 빈틈을 더 세심하게 알아볼 수 있다. “내가 너야. 그래서 나는 알아본단다” 하고 말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스스로가 지닌 취약함을 통해 학생들의 취약함을 알아보고 이해의 시선을 건넬 수 있는 교수가 됐으면 한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