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실적의 대상 아닌 독립된 삶의 주체로 바라봐주길"

이정원

제주도교육청 정책소통관

언론홍보 98학번

1998년 언론홍보학과 1기로 입학해 2004년 2월 졸업했다. 운좋게 대학 4학년인 2003년 11월 도내 신문사 기자가 됐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대학 때 기자 외의 진로를 생각하지 않았다. 고민이 깊지 않아 결정도 빨랐다. 졸업을 앞두고 기회가 왔고 입사 시험에 붙었다. 그 때만해도 기자를 평생할 줄 알았다. 

충격적이고 슬픈 상황이 취업 이후 발생했다. 확고해 보인 결심이 너무나 쉽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자 생활이 힘들었다. 하루하루가 난관이었다. 스스로가 이상했다. 내게 묻고 또 물었다. ‘기자 하고 싶다며? 원하던 일 아니었어?’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게, 하고 싶은 일이 왜 하기 싫어졌을까.

솔직히 일이 부담되지는 않았다. 사안을 분석하고 글쓰기를 좋아했으니. 언론사 내부 기대도 컸다. 언론홍보학과 출신이어서 다른 학과 출신보다 남다르고 뛰어난 능력과 적응력을 보여줄거라 믿었을 것이다. 20대 초년 기자로서는 드물게 비중있는 역할과 기회를 받았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건 오래가지 않았다. 민망한 실수와 치명적인 낙종이 이어졌다. 현장 적응력과 전문성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이불킥한다.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내린 답은 ‘사람’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었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 취재ㆍ특종 경쟁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출입처 사람들을 만나 친분을 쌓지만 취재 대상이기 때문에 언제나 관계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은 벽이 있었다. 사람의 말을 의심하고 다른 곳에서 재확인하는 습관이 불편했다.

결정적으로 나이와 경력이 훨씬 많은 ‘어른’들과 유연하게 친해지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서툴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만도 했다. 직함만 기자일 뿐 나이는 대학을 갓 졸업한 어리바리한 20대 중반이었으니. 

오랜 시간에 걸쳐 뿌리내린,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로 얽혀있는 ‘어른들의 세계’를 혈기와 의욕으로만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은밀하면서 중요한 정보를 알아채지 못하니 경쟁에서 뒤처지는 게 당연했다.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사람 만나는 걸 두려워하면 취재가 어렵다. 취재 능력은 기사의 질, 기자 자질과 연결된다. 나는 갈수록 커지는 사람의 두려움으로 기자 자질을 펼치지 못했다. 결국 입사하고 2년이 지나 오랜 꿈을 접었다.

‘사람이 힘들지 일이 힘든가.’  학생들이 앞으로 직장에 들어가면 이런 푸념을 많이 듣게 된다. 물론 지금도 이 말을 실감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인생의 본질은 ‘버티는 것’이다. 직장이 어디든, 연봉이 얼마든 ‘버티는 힘’이 있어야 나를 다독이며 내일로 걸어갈 수 있다. 

버티는 힘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혼자서도 버틸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우린 태어나자마자 부모님 품에서 사랑과 칭찬, 인정을 받았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칭찬, 인정이 크면 클수록 버티는 힘도 커진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버려졌다고 느낄 때,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고 느낄 때,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두려울 때, 그동안 쌓아놨던 버티는 힘은 급격히 사라지고 결국에는 나 조차도 나를 부정하게 된다.

대학은 ‘일’을 잘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줄지 모르지만, 사람과 관계를 잘하는 대단한 방법이나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방법과 정답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졸업 이후 만나는 많은 고민과 아픔, 문제들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취직을 위한 공부도 중요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고 싶다면 삶의 중심에 ‘사람’을 놓아야 한다. 

사람들과 동등하게 나누는 사랑과 우정, 웃음, 인정 등이 꿈을 이어가게 하고 가장 힘든 삶에서 나를 구원한다. ‘사람’은 나를 성장하게도 하고, 파괴하기도 한다.

대학에도 제안한다. 취업을 잘 시키는 것 이전에 취업 이후 사람들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학생들을 많이 인정하고 사랑해주길 바란다. 

학생들을 취업 실적의 대상이 아닌, 독립된 삶의 주체로 바라봐주길. 그래야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대학을 계속 기억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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