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인

무역학과 2

몇 달 전, 집 정리를 하다 부엌 한쪽 구석에 쌓여있던 새 텀블러들을 발견한 적이 있다. 직접 산 것은 아니고 그동안 참여했었던 여러 행사, 박람회, 지역 축제 등에서 받은 홍보ㆍ판촉용 텀블러들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록 포장 한번 뜯지 않은 채 보관돼 있었고 디자인과 기능을 따져보았을 때 앞으로도 손이 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새 물건들을 버릴 수 없어 다시 선반을 닫았던 기억이 난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 현상이 계속되는 현재, 환경을 보호하고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너무도 당연한 도덕과 시민의식이 됐다. 그러면서 이왕이면 가격이 조금 있더라도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물품을 소비하는 것이 올바른 소비자라는 관념이 생겨났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으로 에코백과 텀블러, 머그컵이 있다. 이러한 제품은 겉으로는 친환경적임을 강조하는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탄소배출을 늘리고 환경오염을 가속화하는 그린워싱에 해당한다. 

2019년 덴마크 환경식품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텀블러는 약 1000번 이상, 에코백은 약 7100번 이상 사용해야 일회용품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횟수를 채워 사용하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것이고, 쓰레기 처리 문제도 상당하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텀블러가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것만큼 위험한 것은 그린워싱 제품을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환경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 소비자들의 심리이다. 이는 일종의 면허효과로, 환경에 보탬이 되는 소비를 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껴 일회용품을 조금 더 사용하는 등 어느 정도의 이기적인 행동을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위장 환경주의가 만연하게 된 데에는 소비자들의 책임만이 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소비자들이 알게 되는 정보는 결국 기업이 제공하는 것이다. 합리적 소비가 올바른 선택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돈을 조금 더 지급하고서라도 친환경적 소비를 하려는 사람이 늘어 많은 기업도 그 추세를 따라가고 있다. 그 때문에 소비자의 도덕성과 환경보호에 관한 경각심을 자극해 자사의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마케팅이 활발해졌다. 

자신이 기업의 의도적인 녹색 포장에 속아 비친환경적인 상품을 한 번이라도 구매한 적이 있다면, 이 글을 통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는 친환경이라는 단어를 보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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