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청년들의 화두는 무엇일까. 코로나19로 헝클어진 교우관계, 컴퓨터 화면으로 대체된 강의실, 폭넓은 교양과 지성을 연마하는 데 매진할 시간을 취업과 스펙 쌓기에 몰입하여야 하는 노력의 불일치. 청년의 삶은 위드 코로나 시대에 더욱 팍팍하다. 이 와중에 청년을 향한 어설픈 정책들은 오히려 청년의 마음에 생채기만 낼 뿐이다. 

80년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3S 정책을 폈다. 국민의 관심을 스포츠(Sports), 성 풍속(Sex), 엔터테인먼트(Screen) 등으로 돌려서 민주화 운동이나 정치·사회적 문제 제기를 무력화시키려고 하였다. 프로 스포츠가 생겼고, 칼라 TV가 보급되었으며, 3저 호황(저유가, 저금리, 저달러)과 맞물려 룸살롱과 접대 문화가 사회 현상이 되었다. 신군부가 두려워했던 것은 정권의 정당성과 더불어 ‘깨어있는 청년의 사회에 대한 저항 정신’이었다. 청년의 시선을 3S로 돌려 부당한 정권과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감도록 유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고, 신군부는 6·10 민주항쟁으로 불붙은 깨어있는 시민의 저항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나 민주의 가치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여성의 투표권은 민주주의 전통이 일찍 확립된 국가에서도 지난한 투쟁의 결과로 얻어낸 것이다. 미국이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것은 1920년이었는데, 이는 노예보다 늦게 참정권을 보장한 것이었다.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했지만, 이 선언의 ‘인간’에서 여성은 제외되었다. 프랑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은 수많은 피의 시간을 거쳐 1944년에서야 허용되었다. 

페미니즘이 남녀의 대결을 부추기는 용어가 되었다.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해소하여 불평등한 관계를 평등하게 만들자는 운동 또는 이론을 말한다. 물론 급진적 페미니즘 이론이 지니는 대결 구도가 사회적 논란을 낳기도 하지만, 아직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20대 남녀의 대결 구도가 심상치 않다. 정치적 지향점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의 양극화도 심각하다. 그런데 이 대결의 기저에는 분열을 통해 이득을 보는 기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 20대를 남녀로 분열시키고, 페미니즘으로 청년의 사고를 대결시키는 이면에는 ‘깨어있는 청년의 사회에 대한 저항 정신’을 잠재우려는 기득권의 논리가 숨어 있다. 

청년은 분열이 아닌 단결의 힘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향해 깨어있는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청년의 화두는 자신의 안일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열린 정신이어야 한다. 대결과 배척으로는 시대의 화두를 담아낼 수 없다. 80년대를 살아낸 청년들의 시대정신과 지금 청년들의 시대정신의 차이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손해에만 반응하는 공정이 시대정신일 수는 없다. 꼰대가 되어 버린 지난날의 청년이 지금의 청년에게 권하는 한 마디는 ‘젊은 정신’이다. 취업과 학업 등의 무게에 짓눌린 세대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일 수는 있지만, 청년이 젊음인 것은 정신이 젊기 때문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권리는 책임을 아는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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