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역사 기행 / 이영권 / 한겨레 / 2004

초보 농부를 자처하는 박성인씨는 30년 넘게 노동운동을 해왔다. 그는 연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으나 군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노동 현장에 들어간다. 1986년 다산보임 사건, 1991년 제파PD 사건으로 두 차례 감옥 생활을 했다. 둘 다 국가보안법 혐의였다. 지금은 제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농민장터를 열어 농산물을 판매한다. 

몇 년 전에 아라동에 있는 서점에서 그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그가 한 말 중에 “가장자리 농법”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이곳 제주도에서 가장자리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장자리는 어떤 면의 주변에 있는 가늘고 긴 공백 부분인데, 그곳에서 변화가 가장 잘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자니 4·3도 우리나라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난 변화의 사건이었다.

제주에 대한 역사 공부를 하려고 책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책이 『제주 역사 기행』이다. 이 책은 중앙의 시선으로 바라본 제주 역사가 아니라 제주에서 바라본 제주 역사를 기록해놓았다. 삼별초와 목호의 난, 신축민란, 4·3 등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생각의 전환을 이룰 수 있었다.

이 책에 이어 발간한 『새로 쓰는 제주사』(휴머니스트, 2005) 역시 역사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시를 쓰면서도 역사는 별 상관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를 쓰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 특히 지역에서 시를 쓴다면 지역의 역사를 모르고 시를 쓸 수 없다. 

제주 역사를 살피면서 쓴 시들이 몇 편 있다. 졸시 「사랑의 후예」는 목호의 난에 대한 생각으로 쓴 시다. “사랑이란 그런 거야/ 가고 싶은 나라 같은 것/ 내 몸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다시 돌아 끓어오르는 더러운 것/ 조국에 대한 그리움보다/ 먼 이국에 대한 동경/ 너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어”라는 부분에서 “더러운 것”은 목호의 피를 염두에 둔 말인데, 그 피가 곧 사랑의 피 아닌가.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이 섬에 온 고려군이 제주도 사람들을 바라본 눈빛과 4·3 당시 토벌대의 눈빛이 같았을 것 같아 섬뜩하다. 가장자리에서 일어난 4·3은 변혁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통일 운동이었다. 중앙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이 섬에서 제주도 사람들은 살기 위해 봉화를 올렸다. 

제주대학교에는 뭍에서 온 학생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 휴일에 제주도를 둘러본다면, 이영권의 역사 책을 읽고서 여행을 다니기를 바란다. 제주도가 고향인 대학생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