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부조리한 현실 맞서고자
웅혼한 제주 항쟁의 역사 녹여낼 것
대중과 교감하는 작품 하길 바라

>> 전지적 제주 작가 시점 <1> 김경훈 시인

김경훈 시인의 모습이다.

▶첫 서정 시집 <수선화 밭에서>를 출간한 계기는.

그간 제주 4ㆍ3의 참혹한 서사나 집회 현장에서 투쟁 시, 강정과 성산을 오가며 현장 시들을 쓰고 낭송하다 보니 ‘참여시인’, ‘거리의 시인’ 이미지가 굳어졌다. 이번엔 과격한 선동의 언어가 아닌 유연한 연민의 언어로 사람과 사물에 대한 시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음풍농월의 관조적 서정이 아닌 현실의 사정, 민족의 사정을 다루고자 했다.

▶강정 해군기지, 제2공항 등 제주의 현실적 문제를 시에 담는 이유는.

강정이나 성산은 국가 권력이나 지방정부 그리고 자본이 동맹 돼 일방적으로 지역주민들을 억압하고 축출하려는 현장이다. 시인은 본능적으로 약자의 편이다. 약자의 편에 서서 부조리한 현실에 함께 맞서 싸워나가야 한다. 나는 제주 토박이이고, 제주가 군사기지화 되는 것과 난개발로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시를 써 그들과 함께하고자 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제2공항 반대 때 수산2리에서 창고 벽이나 마을 담벼락에 벽시 작업을 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강정마을에 잘 가지 못하고 있지만, 2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꼴로 다녔다. 강정마을은 매일 작은 문화제를 하는데 3년간 목요일마다 가서 시를 낭송했다. 그래서 ‘강정 목시’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간 낭송한 시들을 모아 시집 <강정목시>를 펴내기도 했다.

▶4ㆍ3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문학으로 승화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제주 4ㆍ3을 전면적으로 다룬 시집에는 <한라산의 겨울>, <눈물 밥 한숨 잉걸>, <까마귀가 전하는 말>이 있고, 마당극 대본집으로 <살짜기 옵서예>, <소옥의 노래>가 있다. 제주도의회 4ㆍ3 특별위원회 조사 요원, 제주 4ㆍ3 사업소 전문위원, 제주 4ㆍ3 평화재단 조사위원을 맡아 제주 전역을 누비며 4ㆍ3에 대한 조사와 증언 채록을 통해 수많은 사연을 접하게 됐다.

이 사연들로 시와 마당극 대본을 썼다. 너무나 생생하고 참혹한 사연을 품은 증언자들과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온몸이 떨릴 정도였다. 작품으로 써야 할 때는 상황에 빙의돼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당국의 검열이 심해 마당극 대본을 신고해 검사받아야 할 정도였다.  

소위 ‘자기검열’이라고 해서 스스로가 검열하고 검열당하는 일도 있었다. 마당극 단체 ‘놀이패 한라산’에서 제주 4ㆍ3을 다룬 마당극 공연 ‘4월굿 한라산’을 했을 때는 전 단원이 경찰 당국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당국의 검열과 자기검열을 과감히 뿌리친 대가였다. 그 이후로 놀이패 한라산은 매해 제주 4ㆍ3 마당극을 검열과 제한 없이 무대에 올리고 있다.

▶책 출판 과정에서 지역 작가에게 불리한 여건은.

요즘은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제주 지역의 문인들에게 많은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시집도 재단의 지원을 받아 출판했다. 다만 지원이나 교부신청 정산 등의 과정이 까다로워 지인에게 부탁해 겨우 처리했다. 그간 20권 정도의 책을 펴냈는데, 이 중에 절반 이상은 지역 출판사를 거쳐 출간했다. 지역이라 그런지 홍보나 배포도 지역에 한정된다. 대다수의 지역 작가들 대부분이 이런 여건에 대해 섭섭한 마음이 많을 것이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은.

10년 전부터 제주 4ㆍ3을 다룬 대서사시를 쓰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표하고 다녔다. 제주도 민중들의 삶과 투쟁, 처절한 죽음으로써 지키고자 했던 제주도공동체, 그 웅혼한 항쟁의 역사를 서사시에 녹여내겠다고 말이다. 이러한 활동뿐만 아니라, 여력이 된다면 제주의 역사, 인물, 자연, 사람, 마을, 민속 등을 다룬 시편들을 묶어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지역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현실을 외면하는 서정이 아닌,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 대중과 교감하는 작품을 하시길 바란다. 항일 독립운동 시절과 제주 4ㆍ3 항쟁 시기에 ‘인민은 물이고, 빨치산은 물고기’에 비유했었다. 물 없인 물고기가 존재할 수 없다.

작가는 대중이라는 커다란 물속에서 활동해야 한다. 또한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민, 사회발전에 대한 신념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작품 하나 머릿수 하나 보태야 한다. 제주의 4월을 서정으로만 노래할 수 없고, 광주의 5월을 꽃으로만 찬미할 수 없다. 서정과 서사라는 좌우익의 날개로 빛과 어둠,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헤쳐나가는 작가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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