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문화 제주도 육지 이어 유배, 삶의 방황에 교훈 줘 힘든 시기 수양으로 승화

>> 전지적 제주 작가 시점 < 3 > 양진건 시인
 

양진건 작가의 모습이다.

양진건 작가는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유배 문화 콘텐츠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그는 제주 유배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 <제주유배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집필하고, 웹소설 <천재들의 밥상>을 연재하고 있다.

▶ 유배 문화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유배지로 주목받았던 제주도에 유배인들이 미친 영향에 대해 알고 싶었다. 조선 시대에 유배가 활성화되면서 유배인들이 제주도로 유배를 많이 왔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교학 활동을 펼치기도 했는데, 그들이 어떤 이들을 가르치고 제자로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궁금해 유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 책뿐만 아니라 웹소설, 유배길 등 다양한 유배 문화 콘텐츠를 제작했다. 콘텐츠 기획의 취지는.

유배인들이 제주도민들과 만들어 낸 여러 가지 문화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들이 남긴 문화와 제주에서의 생활 방식을 바탕으로 웹소설을 쓰기도 하고, 유배인의 밥상 문화를 상품화해 관광객들에게도 소개하고자 했다.

▶ 자료발굴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유배인과 제주인의 관계가 활발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주도는 외딴 섬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 옛날에도 유배인과 제주인 사이에 소통의 채널이 만들어져 문화가 교류됐다. 즉, 유배 문화는 유배인과 제주인이 서로 영향을 끼쳐 만들어졌다. 제주로 유배를 왔던 추사 김정희만 해도 제주도 제자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조선 최고의 예술가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유배를 온 덕에 제주인들은 공부할 수 있었다. 유배 문화처럼 문화, 예술, 교육 등 여러 측면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문화는 흔치 않은 것 같다.

▶ 좋아하는 유배 이야기는.

추사 김정희에 대한 웹소설 <천재들의 밥상>을 쓰고 있는데 쓰면 쓸수록 재밌다. 또, 추사가 제주도에서 보낸 9년 동안의 이야기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의 자세를 공부하고 있다. 추사는 자신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굉장히 몰입하던 사람이다.

벼루 열 개를 구멍 내고, 붓 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을 정도로 쓰는 것을 반복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미쳐야 미친다는 것을 몸소 보였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더 열심히 글을 쓰도록 스스로 재촉하고 있다.

▶ 유배 문화가 오늘날 시사하는 바는.

제주 유배 문화를 돌이켜보는 이유는 과거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려면 육지에 있는 유배인들이 유배를 와 세상을 알려주거나 제주인들이 태풍을 만나 표류하는 방법뿐이었다. 지금 우리는 발달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 자극을 받을 수 있지만, 과거 제주도인들은 출륙 금지령으로 300년 동안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코로나19로 ‘자발적 유배’를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배인들이 남긴 전통을 생각한다면 이 유배 기간을 잘 이용할 수 있다. 유배인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유배 기간에 자기 실력을 닦고, 제자를 가르치고, 수련도 해가며 유배를 마쳤을 때 한층 성장해 돌아갔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좋을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다. 당장 취업이 안 되고, 미래가 불안한 시기가 유배의 시간이다. 유배인들이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해나갔는가를 교훈 삼는다면 우리도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

▶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배지를 ‘밧모섬’이라고 일컫는다. 본인에게 밧모섬과 같은 공간은.

밧모섬은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써낸 유배지로 유배인들의 성지가 됐다. 추사의 밧모섬은 대정의 초가집이었고, 나의 밧모섬은 작업실이다. 정실마을에 혼자 즐긴다는 뜻의 ‘독락당’을 만들어 유배인처럼 글을 쓰고 있다. 이 밧모섬에서 요즘 나의 관심사인 웹소설을 계속 써 내려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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