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한 역사 반복되기 마련
작가는 세상의 소리 내는 사람
제주다움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일

>> 전지적 제주 작가 시점 < 4 > 김수열 시인
 

김수열 작가

▶ 최근 제주대학교 개교 70주년 축하 기념 헌시를 기증했다.

헌시를 요청받아 쓰게 됐다. 내게 이런 기회가 주어져 영광스러웠다. 내가 제주대학교 출신이기도 하고, 시인으로 등단한 지 40년이 되는 해여서 모든 게 잘 맞물리는 느낌을 받았다. 시에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이 학교만이 가지고 있는 70년의 세월을 담고자 했다. 제주만의 정신을 이끌고, 제주의 미래를 키워나가는 학문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살렸다.

▶ <달보다 먼 곳>에는 시인이 문학 인생을  걸음으로써 제주의 아픔을 알아가는 과정이 드러난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달보다 먼 곳’은 김시종 시인과의 인터뷰에서 영감을 받은 제목이다. 김 시인은 4·3 때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 조선인으로 사신 분이다. 원래 고향은 북쪽이셨으나 이제는 갈 방법이 없어 제주가 고향과 마찬가지였다.

이데올로기적인 이념으로 인해 밀항을 선택하셨고, 국적이 없어 한국에 오실 수 없었다. 부모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도 가지 못하니 그에게 제주는 늘 달보다 먼 곳이었다. 머릿속에는 떠오르는데 현실적으로 갈 수가 없는 공간이다. 

▶ 아픈 현실을 맞대면하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은.

부모님, 조부모님의 역사를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내일의 역사 또한 없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4·3 사건을 알게 됐다. 학교에서는 물론 주변 어른에게서도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었다.

당시의 정직하지 못한 권력이 그들의 잘못을 잊으려 했다고 생각했다. 망각한 역사는 언젠가 다시 반복된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죄를 묻자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도 기억하자는 뜻이다. 

▶ 문학으로 아픔을 대변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매번 고민한다. 사회가 글을 쓸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 작가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는 ‘곡비’ 같다. 곡비는 중국 왕조 시대 때 장례식 병풍 뒤에서 곡소리를 내는 역할을 했던 노비다. 장례 기간이 석 달이 넘다 보니 대신 소리를 도맡아 낸 것이다.

그들의 슬픔이 아니었지만 슬픔인 것처럼 울었다. 하늘과 땅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이 작가가 가지는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한발 앞선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출세를 위해 서울로 떠나고자 했지만, 제주에 남은 덕분에 이 섬에 대해 더 알 수 있었다. 같은 관념을 가진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자신이 발 디딘 곳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사랑받을 수 없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그 주변을 향한 관심과 애정 없이는 어떤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한다. 출세하려면 육지로 가야 한다는 말은 다 옛날얘기다. 오히려 살기 좋다고 제주로 모이는 추세이지 않은가. 제주가 육지와 같다면 사람들은 제주로 옮겨 올 이유가 없다. 따라서 우리 젊은 세대가 할 일은 제주를 제주답게 두는 것이다. 그리고 자부심을 품었으면 좋겠다. 제주는 우주처럼 무궁무진하고 참 대단한 역사와 환경을 가진 섬이다. 마음을 넓게 가지면 이 섬에서 내가 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확신한다.

▶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은.

절친했던 친구와 특히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시집을 쓰고 싶다. 생활이 어려워 어머니가 두 번에 걸쳐 일본에 가셨었다. 아마 세 권에서 다섯 권 분량의 장시집이 될 거다. 

제주의 역사도 그럴 것이 밀항 이야기를 포함하지 않으면 역사는 절반에 불과하다. 시골에 가면 수도 시설이나 전기 가설을 위해 기부하신 분들을 기리는 비석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의 대부분이 밀항자였다. 차별받고 힘겨운 노동을 하는 와중에 마을을 위해 돈을 보냈다. 그분들에 의해 제주도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으나 그들을 소홀히 대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이 두 가지를 쓴다면 작가로서 어느 정도 책임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