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인간의 자격은 주어지는 것인가,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인가. 비인간적인 존재와 인간적 존재, 그리고 인간의 자격까지 다다르는 수많은 고민은 자신이 당연히 ‘인간’이라고 받아들여 왔던 기본 전제를 뒤흔들었다. ‘인간’이란 단어는 단지 ‘종’의 형태를 넘어선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책 ‘인간 실격’은 인간이지만 인간이 될 수 없던 삶을 살아온 ‘요조’를 통해 인간의 자격이 무엇인지 깊이 있는 고민을 하게끔 한다. 

‘인간 실격’은 말 그대로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한 주인공 요조의 삶을 그려낸 책이다. 요조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성추행과 가족들의 억압 속에서 유년기를 보낸다. 참으로 불우한 유년기 때문인지 타고난 것인지 요조는 인간을 두려워하며, 이해할 수 없고 가식적인 존재라 여긴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들키기 싫어 항상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잘생기고, 성격 좋고, 성적도 좋은 그는 어디를 가나 인기가 많았다. 그것은 그가 만들어낸 또 다른 요조의 모습일 뿐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에 갇혀 본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 그는 대학 생활 중 만난 호리카에게 술, 담배, 매춘을 배우며 그것을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잊는 도피처로 여기고 점점 타락한 인생을 살아간다. 사회가 정한 윤리적 틀을 벗어난 방탕한 삶 그 자체였다. 그 또한 그런 자신을 혐오했다. 소설 끝 자신을 ‘인간실격자’라 칭하는 부분에서도 자신을 혐오하는 요조의 태도를 찾을 수 있다. 

윤리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요조의 삶을 마냥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책 속에서 요조가 단순히 사회 ‘악’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조’를 둘러싼 환경은 한 인간이 미치지 않고야 버틸 수 없는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혼돈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요조의 행위를 보며 인간의 자격을 논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혼란이 왔다. 

소설의 도입부는 “부끄러움이 많은 생을 살아왔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요조의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저 문장이 일 것이다. 인간 실격, 즉 요조는 자신의 말처럼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자격이 무엇인지, 그 자격은 타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세상에는 규칙과 인간의 자격을 전제해두고 있다. 법과 도덕 등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규범은 우리에게 어느새 기준이 되었고 우리는 그 기준의 틀 안에서 생활하게 된다. 본질적으로,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살피기보다는 그 기준에 맞추며 살아가기 바쁘다. 그리고 틀을 벗어나면 ‘비인간적인’ 존재가 돼 버린다. 인간 실격 속 주인공 요조처럼 말이다. 어떻게 보면 요조가 인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런 세상과 이런 세상의 틀에 맞춰 자신을 속이고 살아가는 위선적인 인간들이 기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태어나길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사회가 정한 암묵적인 규칙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인간의 자격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과연 그들이 바라는 진정한 ‘인간상’일까? 그렇다면, 종을 넘어선 인간의 자격은 끝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얻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야 하는 허구일까? 

이 소설이 단지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다룬 허구적 요소로 비치지 않는 이유는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삶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부유한 집안, 자살기도, 성격 이 모든 것이 작가를 가르치는 단서일 정도로 비슷했다. 이러한 작가가 생을 마무리한 뒤 유족들이 그의 집에서 발견한 소설이 바로 인간 실격이다. 어쩌면 작가는 인간 실격 주인공 요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인간실격의 마지막 구절은 “요조의 아버지가 나빴어. 요조는 참 착한 아이였지”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요조를 비난하고 싶은가? 아니면 요조의 삶을 동정하는가? 둘 중 무엇이든 상관없다. 요조를 통해 인간에 대한 자격과 사회가 만들어낸 인간, 인간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싶다면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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