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풍경』/레 응우옌 뚜 프엉 외 11명/누구나/2022

이 책은 제주도로 이주해 사는 외국 여성들이 낸 책이다. 낯선 나라에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나는 서귀포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이 여성들을 만나 시를 함께 공부했다. 결혼 이주 여성들은 처음엔 시를 어려워했지만, 시의 매력에 금방 빠져들었다. 낯선 이미지를 형상화하면 좋아서 그들의 나라 이야기는 시의 제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레 응우옌 뚜 프엉은 베트남의 껀터 까이랑 수상시장에서 가족과 함께 장사를 했던 경험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배를 타고 수상시장에 과일을 팔러 간다. 배 옆구리에 파도가 찰싹 치면 해가 뜰 무렵이라고 표현한 점이 근사하다.

누엔 티 쿠인 역시 베트남에서 왔는데, 소나기 내리는 고향의 바람 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로 “싸오싸악 싸오싸악”이라고 말한다. 나라마다 다르면서도 바람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말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필리핀에서 온 치크 앗체코소는 사람이나 사물을 그림자처럼 표현하고, 비 내리는 날의 풍경을 그렸다. 여느 유명한 그림책 못지않은 그림 실력에 깜짝 놀랐다. 혼자만의 그림책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베트남에서 온 도 티 떠이는 봄이면 고향 마을 비케에서 열리는 미에우디엔 꽁 축제를 시와 그림으로 표현했다. 마치 제주도에서 열리는 입춘굿놀이와 닮았다. 주오이, 봉, 두두, 탄롱 등의 지역 특산 과일들을 그림으로 그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응우옌 티 투 히엔은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고향의 향기는 엄마의 옷 향기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 천식에 걸렸는데, 엄마를 기다리면서 울 때 엄마 옷을 안고 잠이 들었다고 한다. 엄마는 병원비를 벌기 위해 일하러 가야만 했기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짙게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책에는 한국 태생 사람도 두 명 포함했다. 다문화는 우리나라 문화도 포함해야 다문화가 된다. 한국 태생이든 외국 태생이든 유년의 추억dms 비슷하며, 자연을 노래한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같은 풍경에서 자랐다.

봄바람이 드세게 불어서 달력을 보니 영등할망의 손길이다. 영등할망은 음력 이월 초하루에 이 섬에 와서는 보름 동안 머문다. 베트남에서는 ‘아줌마바람’ 설화가 있다는 얘기를 도 티 떠이에게서 들었다. 어느 땅에서나 사람들은 자연에 의지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책에 나오는 내 마음의 풍경은 여러 나라의 고향 풍경이지만, 그 풍경은 곧 이 땅의 풍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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