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 없는 선택이 정의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가
잔혹함과 고통을 함께 기억해야…

이정원

사회학박사

언론홍보 98학번

지난주 영화 <레벤느망>을 봤다. ‘레벤느망’,( L’Evenement)은 프랑스 단어로 뜻은 ‘사건’이다. 영화는 아니 에르노의 소설 <사건>을 원작으로 한다. 

오드리 디완이 연출한 <레벤느망>은  2021년 ‘제78회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베네치아 영화제’는 국내에서 ‘베니스 영화제’로 잘 알려져 있다. 칸, 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국제영화제다. 

<레벤느망>이 한국에서 화제가 된 건 영화제 심사위원장 때문이다. 황금사자상을 준 심사위원장이 봉준호 감독이다. 봉준호와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레벤느망>을 최고 작품으로 선택했다. 봉준호는 시상 무대에서 “심사위원들이 이 영화를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레벤느망>의 배경은 1960년대 프랑스다. 대학생 ‘안’은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 당시 임신 중절 수술은 불법이었다. ‘안’은 학업을 계속하고 싶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다. 결심을 현실로 이행하기 위한 갖가지 시도를 한다. 실패가 이어진다. 그 누구도 ‘안’을 돕지 않는다. 어느덧 임신 12주차가 됐다. ‘안’은 모든 삶을 담보한 위험한 선택까지 하게 된다. 

영화를 볼 때 관객이 나 포함 두 명이었다. 사실상 상영관을 독점하고 봤다. 눈치 안보고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다. 영화에 대항할 관객이 적으니 영화에 내내 압도된다. 영화가 전하는 어마어마한 잔혹함의 충격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금방 지치고 충격의 여파가 오래간다. <레벤느망>의 경험도 그랬다. 

영화는 가리거나 꾸미지 않는다. ‘안’의 결심과 이행 과정을 매우 빠르고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여성의 몸도 마찬가지다. ‘안’이 산부인과에서 겪는 과정, 임신 중지 시도를 하는 과정 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장면을 보는 게 매우 고통스럽다. 특히 임신 중지 시도를 하는 장면은 너무나 사실적이고 직접적이다. 어느새 나는 입을 틀어막고 고통의 여정을 고통스럽게 함께하고 있었다.

감독의 의도는 분명하다. 여성의 현실은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장면과 정서를 고통스럽게 보여주며 고통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려 한다. 질문이 사라지면 고통은 ‘쾌락’이 된다.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여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여성의 몸과 자기 결정권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제도와 권력이다. 

‘아이를 낳으면 미혼모가 되고, 낳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안’은 자신이 원하는 학업을 포기해야 한다. 영화는 이 지점을 비판한다. 권력의 강요에 의한, 개인의 자유의지가 없는 선택이 정의롭고 아름다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비판은 가장 신성하다고 하는 출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임신 중절 시도를 하는 ‘안’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를 낳아도 사랑하지 못하고 평생 원망하게 될 것이다”

<레벤느망>을 보며 ‘잔혹함’을 떠올렸다. 영화에서 잔혹하고 충격적인 장면이 나오지만, 영화를 ‘잔혹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성이 처한 잔혹한 현실을 잔혹하게 보여줬다면, 이는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의 목적을 성취한 것이 아닐까.

영화를 피한다고 해서 우리가 겪는 잔혹한 현실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잔혹한 현실을 잔혹하지 않게, 판타지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규모와 정도를 따진다면, <레벤느망>은 <어벤저스> 시리즈의 잔혹함을 따라갈 수 없다. <어벤저스> 시리즈는 도시 전체를 파괴한다. 처참하게 부서진 건물 밑에 깔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왜 <레벤느망>은 보기 불편한 영화가 되고, <어벤저스>는 전체 연령이 즐기는 재밌는 영화가 되는가. 고통 받는 사람들을 비추지 않기 때문이다. 

시선을 우크라이나로 옮긴다. 그곳의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어벤저스> 이야기도 아니다.

너무나 잔혹한 현실이다. 피할게 아니라 마주해야 한다. 잔혹함과 고통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성찰하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먼 곳에서 벌어지는 4월의 이야기가 아니다. 74년 전, 제주의 4월에도 비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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