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 어릴 적 추억 남아
퍼포먼스, 살아있는 생명체
‘차이’ 인정하는 대화 필요

>> 전지적 제주 작가 시점 < 5 > 한진오 작가

한진오 작가

한진오 작가는 굿 퍼포먼스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 활동에 도전하며, 신화와 굿 이야기를 담은 <제주 동쪽>과 <모든 것의 처음, 신화>를 집필했다.

▶제주 신화에 느끼는 매력은.

재밌지 않은가. 우리는 할머니한테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장한 세대다. 동화책에 나올법한 이야기 말이다. 집이 가난해 텔레비전이 없었던 때문인지 할머니께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 이야기들이 나중에 알고 보니 신화였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나 추억 같은 것들이 겹쳐져 관심을 두게 됐다.

▶<제주 동쪽>에 담긴 사람과 신화를 품은 24곳 중 재방문하고 싶은 곳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용궁올레’다. 사실 이미 틈날 때마다 방문하고 있다. 이곳의 전설에는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어떤 마을에 내로라하는 송씨 해녀가 살았는데 이 해녀가 큼직한 전복을 보고 물속 깊이 들어간다. 원래 ‘물벗’이 있어야 하는 게 물질인데 이 해녀는 자신이 있었는지 혼자 헤엄치다 물속에서 그만 정신을 잃는다.

용궁 입구에서 깨어난 해녀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나서는 이승의 인간이 있을 곳이 아니라며 돌아가라고 말한다.

단,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잊고 만 송씨 해녀는 무시무시한 장군에게 빌고 빌어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용궁이라는 대자연의 본성을 무너뜨리는 인간의 오만은 경계해야 한다는 일종의 메타포 같은 것이다. 이 사실이 용왕의 귀에 들어가자 용왕은 이승의 인간이 들어올 수 없도록 입구에 경비소를 세우는데 이 경비소가 바위 ‘창곰돌’이다.

▶보호가 필요한 제주의 현장에서 굿 퍼포먼스를 했다.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는.

제주도 한 바퀴를 돌면서 ‘사남굿 설문대’라는 퍼포먼스를 했었다. 제주 곳곳에 설문대 할망 전설이 깃든 성산일출봉의 ‘등경돌’같은 상징물들이 있다. 이제는 난개발로 훼손되고 파괴되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사라져간다.

이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부활굿인 사남굿 퍼포먼스를 했다. 한 명의 예술가로서 펼치는 퍼포먼스이니 진짜 무당이라는 오해가 없길 바란다.

▶메시지 전달 방식에 있어 굿 퍼포먼스와 글의 다른 점은.

애초에 노래나 퍼포먼스의 형태로 신의 내력을 풀어내고 그것을 받아 쓴 것이 신화다. 그야말로 굿판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퍼포먼스라는 것은 상황에 맞게 윤색하고 변환할 수 있다. 글은 논리적이고 서사적이며 한 번 쓰이면 고정이 된다. 제한된 조건 안에서 풀어야 해 어렵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퍼포먼스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다. 몸으로 전해 오는 게 더 창조적이고 에너지도 강하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 글 작업보다는 퍼포먼스를 작업하는 쪽이 훨씬 매력적이다.

▶제주 신화와 굿 문화가 다음 세대에도 전달되려면.

오랫동안 이 문화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예술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영화 <신과 함께>처럼 문화적이고 교육적인 방법으로 신화가 가르쳐주는 진리와 교훈을 우리가 어떻게든 전수해 가야 한다.

지금은 종교적으로 무속 신앙이 살아남기에 상당히 어려운 시대다. 정확히는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전통적 무속 신앙이 그렇다. 굿을 하고 마을의 무사와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 본래의 의미다.

20세기에 들어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겪음으로써 모든 것이 개인화되고 개별화되지 않았는가. 무속 신앙 또한 본질에서 벗어나 개인의 출세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만남이라는 게 없는 세상 같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알고 세상을 익혀갈 수 있는데 요즘은 다 고립돼 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계속 대화할 수 있는 끈을 가졌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은.

올해 순례한 사남굿 퍼포먼스의 전설지를 소개하는 에세이 소설 형식의 책을 낼 계획이다. 다른 활동보다는 글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잡았다.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성장하기 위해 매번 연습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있다. 책을 한 권, 한 권 내는 과정이 나에게는 자기 훈련의 과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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