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 아닌 ‘4ㆍ3’ 수식어 되는 데 오랜 시간 걸려
4ㆍ3구조적 요인, 초토화 작전 배경, 당사자 증언 다뤄
4ㆍ3 진상규명 위한 도민 여론 4ㆍ3 취재반이 만들어내

책, 제민일보의 <4·3은 말한다>에 관한 연구

최낙진

언론홍보학과 교수

‘4ㆍ3’은 오랫동안 침묵의 언어이자 금기어였다. ‘4ㆍ3’의 합법적 공간은 1948년 그날 이후 50년이 더 지난 2000년 1월, <제주 4ㆍ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마련됐다. ‘사건’이나 ‘폭동’이라는 불온한 수식어를 떼고 그냥 ‘4ㆍ3’이 되는 데만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다. 4ㆍ3 진상규명에 다가가기까지 유족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제주 일간 기자들이 중심이 돼 만든 다섯 권 시리즈 <4ㆍ3은 말한다>를 들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책이다. 전예원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은 1993년 제25회 한국기자상 ‘장기기획 보도부문’을 수상한 제민일보의 <4ㆍ3은 말한다> 탐사보도를 묶어낸 것이다. 1권에서 3권까지는 4ㆍ3의 구조적 요인과 초토화 작전의 배경을, 4권과 5권은 4ㆍ3 당사자 증언을 다루고 있다.

◇ <4ㆍ3은 말한다> 각 권의 주요 내용

좀 더 살펴보면 1권은 제주 4ㆍ3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설명(1945. 8. 15~1948. 4. 2)하고있다. 4ㆍ3의 ‘전사(前史)’에 해당한다. 여기에서는 4ㆍ3이 4월 3일 갑자기 발생한 단일 사건이 아니라, 해방 이후 여러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서 비롯됐음을 밝히고 있다.

4ㆍ3 이전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와 1947년 3ㆍ1절 발포사건의 정황, 그 이후 민관 총파업, 검거 선풍, 육지에서 온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횡포, 격화된 좌우익 대립 격화 등이 담겨 있다. 또한 4ㆍ3은 미군정 하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이 책은 미군정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그간 ‘무장폭도’와 이승만 정부의 ‘양민학살’로 주로 규정되던 4ㆍ3에 미국의 책임을 묻는 계기가 됐다.

2권은, 4ㆍ3 당일을 시작으로 5ㆍ10 남한 단독 선거 제주도의 투표 결과를 발표한 5월 11일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기간은 4ㆍ3 제1기(1948. 4. 3~1948. 5. 11)에 해당한다. ‘무장대 공세기’라고 일컫기도 한다. 주요 내용은 무장대와 미군정의 대립, 미군정 하의 본격적 토벌, 이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증언과 고발이 실려 있다. 진상규명 차원에서 미군정, 경찰, 서북청년단 등이 연합한 토벌대의 활동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2권 부록에는 4ㆍ3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각종 보고서와 관련자 인터뷰, 국사 교과서 속의 4ㆍ3 왜곡, 북촌리와 다랑쉬 양민 참사 내용 등을 담았다.

3권은, 4ㆍ3 제2기(1948. 5. 12~1948. 10. 19)에 해당하는 5개월에 걸친 시기를 다루고 있다. 1948년 5월 12일부터 제주 배속 예정이던 여수 14연대가 반란을 일으킨 10월 19일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토벌대에 의한 초토화 작전이 대대적으로 전개된 기간이다.

앞 2권에서 일컫던 무장대 공세가 약화되고, 경비대가 토벌의 주도권을 장악한 시기에 해당한다. ‘함덕지서 피습 사건’을 시작으로 자행된 토벌대에 의한 양민 학살 관련 증언이 담겨 있다. 이 시기에 중산간지대 초토화를 빌미로 토끼몰이식 수색작전이 이루어졌다.

4권은, 4ㆍ3 제3기(1948. 10. 20~1948. 12. 31)로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에 의한 인명피해가 극심한 시기에 해당한다. 해안선 5km 이상의 중산간 지대를 ‘적성지역’으로 간주한다는 포고령 이후 ‘주민소개령’이 내려졌고, 마을 방화와 무차별 학살이 자행됐다. 4권에서는 경비대 9연대와 경찰의 만행, 특히 토벌대 전위대 역할을 한 서북청년단의 횡포 등 초토화 작전의 실상을 밝히고 있다. 대규모 유혈사태의 시작이다. 이에 대한 증언으로 4ㆍ3 피해가 가장 컸던 조천면 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담겨 있다.

5권은, 앞 4권과 같은 4ㆍ3 제3기(1948. 10. 20~1948. 12. 31)에 해당한다. 4권의 조천면을 시작으로, 5권은 시계 방향에 따라 구좌면, 성산면, 표선면, 남원면, 서귀면, 중문면, 안덕면, 대정면 마을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집이라 할 수 있다.

제민일보 4ㆍ3 취재반은 원래 7권 시리즈를 계획했다고 한다. 하지만 5권 발행 후 제민일보에 실렸던 45호분 정도가 아직 책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1권부터 5권까지 주 저자 역할을 했던 김종민 기자가 <제주의소리>,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등에 <4ㆍ3은 말한다>를 계속 연재하고 있다. 이 내용들을 담아 6권과 7권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제민일보의 <4ㆍ3은 말한다>는 이 연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주신문의 <4ㆍ3의 증언>까지 합하면 무려 10년에 걸친 ‘장기탐사기획기사’이다. 1989년 4월 3일자 제주신문에서 <4ㆍ3의 증언> 첫 연재가 시작됐으니 중단되고, 그 뒤를 이어 제민일보에서 <4ㆍ3은 말한다>가 1999년 8월 20일까지 발행됐다. 제주신문의 4ㆍ3 취재반 기자들 대부분이 제민일보로 이동했다. 제주신문 57회와 제민일보 456회를 합하면 총 513회에 이른다. 이러한 장기 연재는 한국 언론에서는 물론이고 세계 언론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 4ㆍ3 의 깊이를 더 한 매체, 책 <4ㆍ3은 말한다>

당시 취재반은 40년 가까이 금기어였던 ‘제주 4ㆍ3’을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의제화했다. 이 의미는 참으로 크다. 4ㆍ3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온 셈이다. 4ㆍ3을 희생자 입장에서, 피해자 관점에서 공론화 할 수 있게 됐다. 미군정과 국가권력의 폭력과 은폐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4ㆍ3 진상규명을 위한 도민 여론을 4ㆍ3 취재반이 만들어 낸 것이다.

신문 <4ㆍ3은 말한다>는 상대적으로 제주도 내에서의 역할이 컸다 할 수 있다. 지역신문이 갖는 특성이자 한계이다. 이에 반해 이 글에서 다루는 책 <4ㆍ3은 말한다>는 ‘제주 4ㆍ3’을 전국 의제화하기에 적합하다. 책은 신문처럼 불길이 확 달아오르는 성질은 약해도 전국으로 해외로 퍼져나갈 가능성은 크다. 이 책 5권 모두 일본어로도 번역돼 있다. 이게 출판의 특성이자 책이 갖는 힘이다.

신문 기사가 책으로 출판됐을 때 생기는 공신력 또한 크다. 신문 기사가 책이 되는 경우는 그 내용의 수준이 출판물로서의 가치를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책은 법과 제도 마련을 위한 주요 자료로 종종 받아들여진다.  실제 책 <4ㆍ3은 말한다> 5권이 법제 마련 자료로 유용하게 쓰였다고 한다. ‘신문저널리즘’이 일궈놓은 신문기사 <4ㆍ3은 말한다>가 ‘출판저널리즘’ 책 <4ㆍ3은 말한다>로 ‘재점화’됐다고 할 수 있다.

‘신문저널리즘’이 발행일 중심의 ‘당대 저널리즘’이라면, ‘출판저널리즘’은 ‘역사 저널리즘’의 성격을 갖는다. 신문이 만든 의제를 책은 편집의 체계성, 내용의 집중성, 휴대의 편의성 등을 높여 주제의식을 확장하고 그 의미를 지속 가능하게 한다. 연구자, 정책 제안자들이 신문 못지않게 책을 찾는 연유이기도 하다.

책 <4ㆍ3은 말한다>는 신문 <4ㆍ3은 말한다>를 넘어 단행본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만들어 냈다. 신문 저널리즘이 출판 저널리즘으로 존재양식이 변화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는 새롭고 빛난다.

끝으로, 본 연구에서 다룬 <4.3은 말한다>그 이전에 나온 4ㆍ3 관련 책들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져야 함을 제안한다. 이 책들은 당시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이데올로기 공세로 말미암아 단행본으로 정식 출간됐음에도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거론할 수 있는 책을 몇 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김명식에 의해 1988년 <제주민중항쟁 Ⅰ>, 과 <제주민중항쟁 Ⅱ>가 출간됐으며, 1989년에는 <제주민중항쟁 Ⅲ>이 출간됐다. Ⅰ권은 저자가 4ㆍ3을 그간의 폭동관점이 아닌 민중항쟁의 관점으로4ㆍ3 자료들을 바라본 책이다. Ⅱ권은 일본에서 1963년 발행된 김봉현, 김민주가 쓴 <濟州島 人民들의 4ㆍ3 武裝鬪爭史>(1963)와 김봉현이 쓴 <濟州島 血의 歷史>를 단행본으로 엮었다. Ⅲ권은 4ㆍ3 관련 정기 간행물, 보고서, 자료 등을 묶어낸 자료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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