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다. 어김없이 꽃은 피고 진다. 제주4ㆍ3특별법이 개정되고 희생자에 대한 보상도 실시될 예정이다. 누군가는 이제야 봄이 왔다고 한다. ‘완전한 해결’이 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봉인된 기억으로 남은 이들도 적지 않다. 4ㆍ3에 대한 색깔론도 여전하다. 4ㆍ3학살의 주범인 박진경 대령의 추도비에 시민단체들이 역사의 철창을 세웠지만 조선일보는 박진경을 ‘남로당과 맞서 싸워 대한민국을 지킨 인물’이었다고 호도하고 있다. 양손자의 입을 빌려 ‘창군 주역에 대한 조롱’이었다고 공격한다. 진상규명이 책임자 처벌로 이어지지 못한 한계다.

 3ㆍ1절 발포 사건과 3.10 총파업 당시 수많은 도민들을 체포, 구금, 고문했던 이들이나, 초토화 작전 당시 지휘부에 있었던 이들 중에는 ‘호국영웅’으로 기억된다. 가뜩이나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또 다시 보수 세력의 4ㆍ3 흔들기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하지만 대학이 자기 역할을 외면한 까닭도 적지 않다. 지난 20년간 정부차원의 진상규명은 많은 성과를 이뤘다. 진상조사보고서와 미군정보고서 등 다양한 자료들도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정부차원의 진상조사와 자료집 발간은 4ㆍ3 진상규명의 시작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연구 성과가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4.3은 여전히 ‘위태로운 진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제주대학이 지역거점 대학에 걸맞는 제 역할을 해왔는지 반성할 때다. 4ㆍ3연구센터가 있긴 하지만 4ㆍ3을 전공한 전임 연구원 한명 없다. 정부차원의 진상규명만 바라보다 연구자 한 명 키워내지 못했다. 4ㆍ3 연구인력의 부재는 심각한 문제다. 4ㆍ3은 역사뿐만 아니라 문학, 사회, 정치 등 그야말로 학제간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다. 최소 30년을 내다보면서 4ㆍ3 연구 인력을 어떻게 양성해 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제주 4ㆍ3이야말로 제주 연구의 출발이다. 4ㆍ3은 진상조사보고서의 규정대로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의 봉기, 그리고 이어진 대학살과 1954년 한라산 금족령 해제로 이어지는 선분적 시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4ㆍ3의 시간은 1374년 대학살(일명 목호의 난)과 1862년 강제검, 1898년 방성칠 그리고 1901년 신축항쟁으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제주 역사의 고갱이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섬 공동체의 자존을 지켜왔던 제주 역사의 모든 것이 4ㆍ3에 담겨 있다. 4ㆍ3은 과거가 아니다. 국가-자본의 폭력이 제주 섬의 공동체를 위협하는 지금, 여전히 4ㆍ3은 기억돼야 한다. 공부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대학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학의 역할을 저버리는 것이다. 연구비 수주 몇 십 억원을 했다고 자랑할 게 아니다. 찬란한 4월, 4ㆍ3 연구의 의무를 저버렸던 대학의 오늘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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