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며, 유채꽃이며,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4월이다. 기나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여기저기서 팝콘 터지듯이 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연일 축포를 쏘아댄다.

길게 늘어선 제주대학교 통학로는 물론 교정에도 연분홍빛 벚꽃들이 만발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비는 가히 봄날, 몽환적이다.

이런 봄꽃의 향연 속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 그 인물은 시간의 더께 속에 아름다움에 묻혀버린, 제주와 연관된 푸른 눈의 프랑스 출신 에밀 타케(Emil Taquet: 한국명 엄택기 1873-1952) 신부이다.

1908년 4월 14일은 타케 신부가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호하천)에서 왕벚나무를 채집해 ‘제주도 한라산이 왕벚나무 자생지’임을 세계에 알린 기념비적인 날이다. 그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잘 알려진 ‘구상나무의 원조는 한라산’임을 알리는데도 선구자적 역할을 한 분이다. 뿐만 아니라 제주 최초로 온주밀감을 1911년 일본에서 선물 받아들여 오기도 했다. 아쉽게도 14그루 중 남은 한 그루가 2019년 4월에 고사했다. 이처럼 타케 신부와 제주를 대표하는 식물들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올해는 타케 신부가 타개한 지 70주년을 맞는 해이고, 2023년은 그가 태어난 지 15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이를 기념해 서귀포문화사업회가 지난해 3월 ‘에밀 타케의 정원, 어떻게 만들까’의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타케 신부가 머물렀던 서귀포시 서홍동 소재 면형의집에 타케의 정원을 조성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 사업은 그의 업적을 기리고, 그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제주도민의 약속을 실천하는 일이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장기화와 함께 사업 추진을 위한 국비를 확보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행정에서의 부족한 관심도 문제이다.

잊는다는 것은 곧 영원한 죽음과 같다. 때문에 그 구심점인 타케의 정원을 조성하고 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타케 신부의 존재는 영원하다 할 수 있겠다. 타케의 정원은 곧, 150년이라는 시간의 통로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 수 있는 공간이다.

상춘객들이 벚꽃을 배경으로 인생사진을 남기는데 여념이 없더라하더라도, 지성인인 대학생들은 그 길을 걸으며 ‘왕벚나무가 일본이 아닌 제주의 것’이라는, 이방인 사제가 남긴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4월이면 잊지 말아야 일들 더 있다. 제주의 살아 있는 역사인 4ㆍ3을 비롯해 제주로 수학여행을 오던 중 소중한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 그리고 지난해 이맘때쯤 제주대 입구에서 발생한 60여명의 사상자를 대형교통사고까지.

마냥 봄기운에 취해보는 것도 좋겠지만 한번쯤을 길게 난 벚꽃 길을 걸으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상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 ‘벚꽃엔딩’이 울리는 이즈음, 시들어가는 벚꽃들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살아 있어야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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