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고 싶은 책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미구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장님이 된 세상에서 혼자만 눈이 보인다면 어떨까? 남들 몰래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테니 편리하지 않을까? 책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남자가 출근하던 중 차 안에서 갑자기 눈이 멀게 되며 시작한다. 앞을 볼 수 없게 된 남자는 주변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고, 아내와 함께 안과에 방문하지만, 실명의 원인을 찾지 못한다. 이후 그의 아내, 안과 의사, 안과 환자들 등 그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잇따라 눈이 멀게 되며 이러한 실명증에 전염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정부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자들을 격리하는데, 이때 안과 의사의 아내가 눈이 멀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남편을 따라 격리 시설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격리 조치는 곧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전염성이 강한 실명증이 곧 도시 안의 모든 사람을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의사의 아내만이 감염자들과 지속해서 접촉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멀지 않는다.

즉 앞서 던졌던 허무맹랑한 질문 속 상황이 그녀에게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아내는 혼자만 눈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늘 언제 장님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일행들을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따른다. 또한 재난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적나라한 상황들을 홀로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고통받는다.

서로서로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익명성 아래 숨은 사람들은 이전보다 무분별해지고,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만 몰두하게 된다. 시민들은 생존하기 위해 남의 식량을 빼앗고, 잘 곳을 찾기 위해 집을 약탈하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쉽게 악행을 저지른다. 길거리에서 옷도 갖춰 입지 못한 채 음식 냄새를 찾아 돌아다니고, 물건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장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의사의 아내에게 결코 축복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처럼 작중에서 무법지대가 된 도시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수많은 갈등이 일어나는 반면, 연대와 격려가 드러나기도 한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주인공 일행은 집에 돌아와 더러워진 몸을 함께 씻으며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함께 고난을 겪으며 사랑을 키우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장면들을 통해 저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과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작중에서 의사의 아내는 이런 말을 꺼낸다. “우리는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이 대사를 통해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실명’의 의미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결국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볼 수 있음에도 보지 않으려 외면하는 사람들의 무관심에 대한 비판이었던 게 아닐까?  사람들은 잘못된 것을 목격해도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이를 묵인하거나 못 본 척 회피하곤 한다. 또한 신문이나 미디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접하는 여러 자극적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남이 보여주는 것만을 보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예시들이 모두 ‘보려 하지 않는 것’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스스로 보려고 하지 않으면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눈뜬장님’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책을 덮은 후에는 ‘본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대부분 사람에게 볼 수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인 일일 것이다. 우리는 눈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하고, 또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무감해졌기 때문에 정작 봐야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면 이는 어쩌면 볼 수 없는 것만 못한 것일지 모른다. 

많은 현대인이 현실에 쫓겨서,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눈앞의 이익만을 좇거나,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것은 보지 않으며 살아가곤 한다. 그러나 눈앞에 문제가 있더라도 이를 깨닫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태도는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그 책임은 구성원 모두가 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나는 정말 문제를 회피하고자 모른 척 넘어간 적이 있진 않았는지’ 성찰해보고, 또 어떤 것을 보며 살아야 할지 스스로 사유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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