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3 학살의 주역 박진경 만행 기억해야… 4ㆍ3 단체들, 역사 왜곡 막으며 끝나지 않은 ‘기억투쟁’ 예고

강호진

제주대안연구공동체 공공정책센터장

법학과 91학번ㆍ1997년 총학생회장

제주 4ㆍ3 문제는 이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잘못된 국가공권력에 의한 4ㆍ3 학살에 대해 국가 차원의 보상금 지급이 올해 시작된다. 액수 논란도 있고, ‘배상’이라는 법적 언어는 획득하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역사의 진전이다.

4ㆍ3특별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지난한 20년 세월을 넘기면서 싸워 온 제주도민들의 성과다. 하지만 3만 명에 육박하는 4ㆍ3 희생자를 낳게 한 가해자에 대한 기억과 책임 문제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 4ㆍ3 학살의 주역 박진경 대령

4ㆍ3 대학살의 책임은 당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있다. 이와 함께 잊지 말아야 할 이름이 있다. 미군정청 경무부장으로 수많은 학살을 야기한 조병옥, 제주도 총무국장 고문치사 등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저지른 서북청년단 제주도위원장 김재능 등이 있다.

군인 중 박진경, 함병선, 송요찬, 탁성록 등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함병선은 4ㆍ3 시기 제2연대장이었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이기도 한 북촌 대학살을 주도한 인물이다. 박진경은 4ㆍ3 당시 9연대장이었다.

박진경 중령은 경남 남해가 고향으로, 부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제주도민 수천 명을 체포했다.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는 재판 증언이 전해질 정도로 강경 탄압 정책을 주도했다.

미군정 딘 소장은 이런 그를 총애해 대령으로 승진시켰다. 그러나 박진경은 승진축하연이 끝나고 육사 출신인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 등 부하들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최후를 맞이했다. 장례식은 육군장 1호로 치러졌다. 서울 동작구 현충원에 가면 그의 비석이 있다. 매해 추모행사도 열린다.

고향인 남해 군민공원에는 박진경 동상이 세워져 있다. 창원 현충탑에서 매해 열리는 현충일 행사에는 ‘경상남도 호국영령 대표위패’로 세워지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박진경과 문상길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해 제주 KBS에서 4ㆍ3 특집 다큐멘터리 <암살, 1948>을 제작 방영하면서 더욱 알려지게 됐다.

◇“박진경을 역사의 감옥으로” 

제주에도 박진경을 추도하는 시설물이 있다. 기존 제주시 충혼묘지에 있던 박진경 대령 추도비 비문에는 “제주도 공비소탕에 불철주야 수도위민의 충정으로 선두에서 지휘하다가 불행히도 장렬하게 산화하시다. 이에 우리 30만 도민과 군경원호회가 합동하여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우고 추모의 뜻을 천추에 길이 전한다”고 새겨져 있다.

박진경 추도비는 지난해 국립제주호국원 조성사업에 따라 어승생한울누리공원 인근 산록북로 변으로 공비 완멸 기념비 등과 함께 이설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소속기관인 제주보훈청이 주도했다.

제주4ㆍ3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민예총, 제주주민자치연대, 민주노총 제주본부 등 제주 4ㆍ3 단체와 시민노동단체들은 지난 3월 10일 세상 밖으로 나온 박진경 추도비에 ‘역사의 감옥’의 이름을 단 조형물을 설치했다. 단체들은 그 이유도 조형물에 적시했다. “우리는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이 자의 추모비를 철창에 가둔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 자에 대한 단죄이자 불의로 굴절된 역사의 청산이다”

제주보훈청은 두 달 남짓만인 지난 5월 20일 이 역사의 감옥을 강제 철거했다. 당일 취재한 언론은 ‘제주보훈청이 박진경을 탈옥시켰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4ㆍ3기념사업위원회 등은 “역사적 단죄의 의미를 담은 이 설치물을 철거하는 행위는 행정의 잣대다. 하지만 우리는 이념적 갈등이 아니라 최소한 제주 땅에서 4ㆍ3 학살의 주역 중 하나인 박진경을 추도하는 시설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또 “박진경 추도비에 대해 4ㆍ3 단체들과 역사학자 등이 포함해서 역사적으로 정확한 사실관계를 적시한 안내판이라도 설치해 줄 것을 최소한으로 요청한다”고 제안해 둔 상태다. 박진경 추도비에 대한 2차 문화예술 행동을 추진하면서 ‘기억투쟁’은 끝나지 않았음을 예고했다.

‘제주대학교 교정에 친일파 동상이 세워졌다면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런 마음으로 4ㆍ3 단체들은 또 다른 싸움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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