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의 스케치북』/김유경ㆍ이영자/한그루/2022

제주 BOOK카페 <16>
 

이 책의 저자 김유경은 미술치료를 연구해왔다. 저서 중에 <제주 4ㆍ3생존자의 트라우마 그리고 미술치료>(학지사, 2014)가 눈에 띈다. 기억의 색을 찾아 그림으로 복원하는 것은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북촌리에서 4ㆍ3을 겪은 이영자의 기억을 스케치북에 담은 책이다.

1934년생인 그는 1949년 1월 17일 북촌초등학교에 영문도 모른 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였다. 군인은 민보단 책임자를 먼저 총살하고, 이어 기관총을 난사했다. 그리고 주민 수십 명씩 근처 밭으로 끌고 가 다시 총살했다. 이날 하루 수백 명이 희생됐다. 이영자는 그곳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말할 수 있으랴. 낸시빌레 학살을 목격한 그는 한 달 뒤 옴팡밧에 들어갈 차례가 됐다. 정신이 오락가락, 힘이 어실어실 빠지는데 대대장이 “중지! 중지!”를 외치면서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했다.

이 책에는 유년에 대한 기억과 일제강점기의 상황, 해방과 4ㆍ3 발발, 가족과 친족들의 희생, 4ㆍ3 이후 생계를 위한 삶, 그림 작업에 대한 마음 등이 수록돼 있다. 구술과 그림을 통해 그때의 아픔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아픔을 토로한 뒤 느끼는 시원함을 말한다.

“죽은 어른들 눈물로 세수허연. 그 어른들 생각하면 눈물이 핑 허게 나지.” 오래된 고통에서 나오는 표현을 보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불 쬘 장작은 이녁이 집에서 가져오고. 거기서 소라들 구워서 먹고. 그러다가 낭 불 떨어지면 집에 오고.” 그는 물질을 하면서 살았다. ‘살암시민 살아진다’를 몸소 보여줬다. 

친족들이 희생된 소낭밭 그림 등 학살 현장을 구체적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잊을 수 없는 그 모습에 고개를 떨구게 된다. 고문을 자행하던 지서에 대한 기억은 놀랍도록 선명하다. 고문 받는 비명을 기억하며, 지서 내부를 설계도처럼 자세히 재현한다.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잊히지 않는 기억이라는 점이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국화꽃보다 장미꽃이 좋다는 그. 그러면서 국화꽃은 죽어서 맡는 꽃이고, 장미꽃은 살아서 맡을 수 있는 꽃이라 말한다. 이영자 역시 천생 여자인 것을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제주도에는 4ㆍ3트라우마센터가 있다. 그곳에서는 마음치유 프로그램으로 4ㆍ3 이야기마당 ‘맺힌 가슴 풀엉 살게 마씀’이 진행된다. 트라우마 대상자가 겪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고, 주위 사람들이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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