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당선

 일러스트 이하나 (미술학과 2)

우리 집 신발장에는 별의별 물건이 숨어있었다. 가죽이 다 벗겨진 축구공, 휘어진 못, 정사각형이 되고 싶었던 나무판자까지. 쓸데없지만 언젠간 사용할 날이 오겠지, 하며 정갈하게 처박아둔 물건들이 꼭꼭 숨어있었다. 그러다 가끔 운동화를 꺼내기 위해 신발장을 뒤지다 보면 ‘아 이런 것들이 있었지’하고 중얼거리게 되는, 눈에 밟히는 것들이 있었는데. 구석에 방치되어있는 드럼스틱이 유독 그랬다. 좀벌레의 좋은 요깃거리가 되었는지 스틱은 잔뜩 흠이 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두 번 다시 드럼스틱을 붙잡아 본 적이 없었다. 왜였을까. 신발장을 열어젖힐 때마다 몇 번 툭툭 두들겨보거나 부모님이 백수 아들을 호되게 다그치는 사랑의 매로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버릴 거면 진작 버렸을 텐데.

몸치에 박치인 나를 보면 아무도 믿지 못하지만 나는 드럼을 배운 적이 있다. 드럼을 치는 것은 운동화를 툭툭 꺼내 신거나 계단을 일정하게 오르내리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악보도 읽지 못하는 내 말은 번번이 사람들에게 허언이 되기 일 수였지만, 내게 드럼을 가지고 와 연주해보라고 할 사람도 없었으니 거짓말이 되지도 못했다. 가끔 의심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추궁하듯 물었다. 밴드부나 동호회에서 활동하셨어요? 아니요. 그럼 취미로 시작하셨어요? 아뇨. 그럼 어쩌다 드럼을 배우셨어요? 음. 긍정도 부정도 아닌 감탄사를 길게 늘어뜨리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재미없다는 듯 아, 예 하며 대화를 포기했지만. 사실 그 감탄사에 모든 의미가 축약되어 있었다. 원래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니까.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곤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별을 붙잡으려 달려가면 등 뒤론 태양이 떠오르고 있더라고

내밀지도 붙잡지도 못하는 두 손과  

밑바닥에서부터 흘러 길고 넓어지는 하루

가끔씩 써 내려간 꿈조차 사라지면

젊음의 반을 태우고 남은 음을 흥얼거려

Um, oh ah yeah

드럼을 처음 접하게 된 계절은 꽃 피는 봄날이었다. 창밖으로 새순과 새싹이 일시 정지된 폭죽의 풍경처럼 피어났고, 따뜻한 봄내가 거리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왜인지 나는 활짝 핀 꽃들을 모두 짓밟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있었는데. 암기하고 있던 사전 속 Spring처럼 나는 어디론가 쏘아 올려져 폭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방을 가두고 있는 콘크리트 외벽과 복사기가 토해낸 것 같은 교복. 이 모든 것들에 환멸을 느끼게 된 것은 가슴 속에서 무언가 나를 부추기라도 하듯 근질거려왔기 때문이었다. 

아마 3교시가 끝난 뒤 자습 시간이었을 것이다. 창문으로 밀려 들어온 햇빛이 책상 위에서 사각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햇빛이 자꾸 내 가슴 사이를 간질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오래된 나무 책상의 균열을 바라보곤 했다. 그 균열 속에서 나는 갑자기 무너져 버리는 교실에서 좋아하는 친구를 구해내거나 창문을 깨고 들이닥치는 괴한을 제압하는 것을 이미지 트레이닝 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훈련이 빛을 발하는 날은 없었다. 당연히 그럴 리 없지. 학교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없었고 지구는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게 돌아갔으니 말이다. 기타인가 괴테인가 하는 작자가 청년은 가르침을 받기보다 감동이나 자극을 받기 원한다 말했던 것처럼, 계절을 작은 청춘을 끓어 올리는 듯 했다.

그렇게 책상 균열을 툭툭 두들기다 소설책을 꺼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옆에 앉아 있던 짝꿍이 “뭐야, 소설가 되게?” 하며 물었고, 나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녀석의 눈을 바라보다 “아마?”라 대답했다. 녀석이 나를 비웃는 줄도 모르고 뭐가 되든 상관없겠다 싶어서. 녀석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별명이 ‘뱁새’라는 것은 기억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새끼. 그래서 뱁새. 순진한 척 행동하지만 선생님 눈을 피해 교묘하게 반 분위기를 흐려놓는 그런 놈. 선생님은 공부만 잘하면 조금 엇나가도 그다지 지적하지 않았으니까. 뱁새는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짓더니 “돈도 안 되는 걸 왜 하려 하냐?” 말했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 하러 그런 걸 해? 소설가가 무슨 전시회를 할 수 있냐, 거리공연을 할 수 있냐? 무대에 설 수도 없고 박수갈채도 없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건데.”

나는 반박할 말을 찾다 겨우 내뱉은 것이 “그럼 너는 뭐가 되고 싶은데?”였고, 그 자식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당연히 판사가 되는 거지!”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자신이 벌써 판사라도 된 줄 아는 걸까.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왜?”라고 물었고,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돈과 명성. 두 단어를 손가락으로 까딱거리며 말했다.

“야. 너는 거리에서 더럽게 쓰레기나 줍고 살고 싶냐? 판사가 되면 사람은 물론 돈이랑 명예도 줄줄이 따라오는데.”

이상했다. 왜 저런 놈이 판사가 되겠다고 말하지.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잘못됐다는 듯 말하는 거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녀석이 풀고 있던 문제집을 그놈의 머리에 내리꽂았다. 책 특유의 둔탁한 소리에 놀란 학생들이 뒤를 돌아봤을 땐 나는 이미 녀석의 주먹에 얻어맞은 채 교실 허공을 날고 있었다. 바람이 불며 학습지랑 볼펜이 휘날렸고, 구름이 걷히며 채도가 쨍하게 변해갔다. 내가 오랫동안 봐왔고 익숙했던 것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형체로 녹아내렸고 흘러갔다. 투명한 각막에 미끄러지는 풍경에서 유달리 초점이 또렷하게 잡힌 아찔한 벚꽃의 낙하. 긴장한 꽃잎의 어지러운 고공 탐방. 그때 나는 멍하니 계절이 교정을 벗어나 도망치는 것을 바라봤다.

그날은 급식이 맛있는 수요일이었지만, 나는 얼음찜질을 하다 남은 얼음을 씹어먹으며 교무실에 앉아 있었다. 부어오른 적양배추만 한 멍이 알알했다. 재미있게도 선생님에게 꾸중을 받게 된 건 내가 아니라 그 녀석이었다. 전말을 알 리 없는 친구들은 모두 내가 일방적으로 당했다 진술했고, 결정적으로 체육 선생님이 교무실로 잡혀 온 녀석을 보고 “무슨 사고를 친 거냐”하고 뒤통수를 후려갈겼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내가 먼저 제 머리를 찍었다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지만, 선생님은 녀석을 어디론가 끌고 갈 뿐이었다. 나는 얼음을 삼키곤 교무실 창문으로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친구들을 바라봤다. 점심을 거를 정도로 저들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건 도대체 뭘까. 병원을 가보라며 조퇴증을 남긴 담임선생님도 점심을 먹으러 사라진 뒤였다. 떠오른 공 하나만 바라보며 우르르 달려가는 아이들. 정오의 교무실에 홀로 남은 나는 마치 투명한 얼음의 색이 된 것만 같았다.

교문을 나서며 다짐 하나를 했다. 뭐가 됐든 그 뱁새보다 더 많이 벌고 더 멋진 삶을 살아가겠다고. 그 자식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리겠다는 뭐, 그런 것들을 말이다. 막상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막막했다. 가로수와 낯선 길이 세상 여기저기 뻗어있었다. 뭐랄까. 사람들은 더해진 시간만큼 무언가 바뀌어 있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성적 더하기에 학벌 곱하기. 그래서 당신은 이만큼 정도의 숫자구나. 하고 제멋대로 정답을 내려버리곤 동그라미 치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억 소리 날 정도로 많은 동그라미를 모아야 사람들은 만족하고 행복해지는 걸까. 어쩌면 내겐 숨겨진 동그라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살아왔지만, 동그라미 하나는 곧 제로. 나는 동그라미를 모으는데 재능이 없었다.

발걸음이 내키는 대로 걷다 보니 목이 말랐다. 편의점을 찾았지만, 거리에는 그 흔했던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괜히 돌아가는 세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싶었다. 아니, 지구만큼 빠르게 달려보고 싶었는지도. 생각을 털어내는 데엔 달리기만 한 것이 없었으니까. 편의점을 찾은 건 그로부터 세 시간쯤 걸었을 때였다. 해가 저문 뒤였고, 침침한 거리를 가로등과 간판만이 밝히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겨우 찾아낸 편의점 앞에서 나는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낡아 해진 편의점 간판은 불이 꺼져있었다. 폐점이라도 한 건지. 투명한 쇼윈도 뒤로 깔끔하게 비어 있는 매대가 있었고, 그 아래엔 포장을 뜯지도 않은 물품 상자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런 이상한 광경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출입문에 붙어 있는 포스터였다. 뭐가 그리 신난지 드럼스틱을 치켜들고 드럼에 앉아 있는 사내와 드럼을 태워 먹을 듯한 불꽃이 그 아래에 타오르고 있는 모습. 이달의 행사제품 포스터는 온데간데없었다. 짜증이 난 나는 포스터를 구겨버릴 작정으로 출입문을 밀었다. 잠긴 줄만 알았던 출입문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나를 끌어당기듯 잡아끄는 출입문에 나는 넘어지듯 편의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느닷없이 들어간 편의점 안은 한 줌의 빛도 소리도 사치라는 듯 모든 것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쓰레기가 잔뜩 밀려온 해변처럼 잡동사니가 굴러다니는 바닥. 그 사이로 옅은 어둠에 쌓여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눈을 치켜뜨자 가려져 있던 실루엣이 점점 뚜렷해져 갔다. 그러니까 내 앞에 놓인 것은, 오래된 드럼이었다. 드럼? 누군가 버리고 간 건지. 아니면 포스터 속 우스꽝스러운 아저씨 것인지. 마치 발신인 불명의 처치 곤란의 택배가 낯선 땅에 배송된 것만 같았다.  

나는 갈증이 나는 것도 잊은 채 드럼 가까이 다가갔다. 드럼은 멀쩡한 구석이 없었다. 그 위에 놓여있는 드럼스틱만이 새것이라 그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드럼스틱을 붙잡고 가볍게 드럼을 두들겨보았다. 탕탕.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묘한 탄성의 진동이 손안에 잔뜩 잡혔다 사그라졌다. 홀린 듯 나는 드럼을 두들기는 손목에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점점 더 빨리, 더 강하게. 좀 더 빠르게, 좀 더 세게!

“악!”

놀란 나는 스틱을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드럼 뒤쪽에서 막 일어난 것 같은 노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순 모든 감각이 멈춰버리는 것 같았다. 노숙자는 나에겐 관심도 없는 듯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리고 떨어진 드럼스틱을 집어 들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무언가 말을 걸 분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편의점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노숙자의 시선에 붙잡힌 나는 다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삼십 대 남짓한 모습의 그 사람은 타버린 피부와 동양인 특유의 삐쭉한 수염이 지저분하게 나 있었다. 갑자기 노숙자가 “드럼을 어떻게 친 거야”하고 내게 다가오는 바람에 나는 순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냥 조금 쳐본 것뿐인데! 노숙자는 계속해서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하며 나를 밀어붙였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구겨진 천이백 원을 꺼내 노숙자에게 내밀었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의 성의라는 듯이. 잔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숙자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나는 편의점을 빠져나와 도망쳤다. 뛰고 또 뛰어 도망쳤다. 고함이 점차 멀어졌다. 꽤 멀리까지 도망쳐왔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거리에서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스쳐 갔다. 마른입에서 헛구역질이 올라왔고, 관자놀이의 맥박이 빠르게 튀어 올랐다. 사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건 드럼을 떠올렸을 때였다. 몸 안에서 전력을 다해 뛰어오르는 무언가. 누군가 회초리 대신 드럼스틱을 들어 나를 내리치는 기분. 어째서인지 두 다리는 점점 빨라져만 갔다. 

편의점 앞에서 한참이나 머뭇거리고 서 있었다. 등교 시간에 낡아 보이는 편의점 앞에서 어물쩍거리는 학생은 누가 봐도 이상한 모습일 게 분명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몰래 바라본 편의점 안은 오래된 드럼을 열심히 닦고 있는 노숙자가 있었다. 닦아도 전혀 소용없을 것 같은데. 나는 조심스레 소리 내어 노숙자를 불러봤다. 하지만 노숙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드럼을 닦기만 했다.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자 나는 홧김에 출입문을 주먹으로 쳤다. 그제야 노숙자는 뒤를 돌아 나를 바라봤다. 멍청하게도, 나는 어제 그 문제의 드럼스틱을 망가트린 주범이 나라는 걸 까먹고 있었고, 노숙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다 드럼에 걸려 넘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웃음을 터트려도, 화를 내도 이상해질 분위기에 잠시 묵념을. 머쓱해진 내가 드럼 옆에 쪼그려 앉아 “드럼 치시나 봐요?” 말하고 나서야 노숙자는 나를 흘끗 쳐다봤다. 분위기를 좀 풀어보기 위해 나는 “저도 지금 드럼스틱으로 패버리고 싶은 놈이 있거든요”하고 말했지만, 노숙자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 거짓말은 아닌데. 내가 쓰러져 있는 드럼을 일으켜 세우자, 노숙자는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악기를 연주해 본 적은 있고?”

“악보도 볼 줄 모르는걸요.”

“허.”
노숙자는 알 수 없는 감탄사를 내뱉더니 몸을 일으켰다.

“왜 하필 드럼스틱인데?”

“사람 대신 악기를 때리는 거죠. 평화적으로. 무언가를 때리는 건 똑같잖아요.”

“세상에. 그따위 자세로 악기를 연주하면 다른 드러머한테 먼저 얻어터질 거다.”

드러머는 어떤 주먹을 휘두르며 싸울까. 나는 뱁새가 나에게 날린 주먹을 떠올렸다.

나는 화려한 복싱경기장 위에 있다. 나는 뱁새에게 주먹을 날린다. 글러브는 어느새 드럼스틱으로 바뀌어 있고, 뱁새는 오간대 없이 드럼만 무대 위에 남아있다. 무대 아래로 굴러 떨어진 뱁새는 나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관객들은 환호하고 나는 회심의 퍼포먼스로 뱁새를 찍어누른다! K.O! 그리고

미친놈인가.

하고 노숙자가 나를 바라본다.

나는 장난기 가득한 상상을 집어넣고 멋쩍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노숙자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드럼을 닦던 천을 집어 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바라봤다. 편의점에서 드럼이랑 지내는 노숙자만큼이나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온 몸에 차오르는 뜨거운 숨. 만조가 시작된 한밤의 적도에 잠겨가는 기분이었다.

“드럼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뭐?”

“사실 제가 좋아하는 애가 있거든요. 지금 얼굴이 이 모양이어서 걱정인데. 뭐랄까, 제가 학교 밴드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제게 호감이 생길 것 같아서요.”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나는 밴드부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고,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설픈 거짓말이었지만 노숙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더니. 이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골 때리는 놈이네. 관중을 홀리려면 기타를 배워야지.”

“소설 쓰는 것보다는 낫겠죠.”

“어떤 애인데.”

“생긴 거랑 다르게 시끄러운 노래를 좋아해요.”

“메탈헤드야?”

“아마도요?”

“얼마나 좋아하는데?”

“글쎄요, 온종일 이어폰을 끼고 살기는 하는데.”

“아니, 네가 걔를 얼마나 좋아하냐고.”

내가 정말 누군가를 좋아할 정도로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었나?

“진심으로 사랑하죠.”

노숙자는 말없이 드럼스틱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더니, 드럼을 닦던 천을 내려놓았다. 나는 어떻게든 노숙자를 설득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기 시작했다.

“밴드부 가입하면 그 뭐냐, 아저씨한테 배웠다고 말할게요. 그러면 아저씨는 수강생 많이 모집 할 수 있고 그러면 돈도 많…”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만 배워.”

노숙자가 내 말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뭐냐 아저씨가. 서른도 안 된 사람한테. 형이라고 불러.”

그렇게 나는 드럼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과정이 엉망진창이긴 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결과만 좋으면 됐지. 드럼은 있으니 근처 악기점에서 메트로놈하고 드럼스틱을 샀다. 읽을 줄도 모르는 악보 몇 개도 샀다. 하교 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나는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대망의 첫 수업은. 뚜껑이 왕 큰 컵라면을 받아드는 것이었다.

“먹으라고요?”

“뭐래.”

형은 내게 드럼스틱을 잡고 자세를 잡으라고 했다. 내가 드럼스틱으로 드럼을 가리키자 형은 컵라면도 드럼이라 생각하면 드럼이 된다고 말했다. 하긴, 주변에 상가도 있는데 드럼을 직접 치는 것은 민폐겠지. 주말 아침이 되면 레슨비를 벌기 위해 전단지를 들고 아파트 단지를 뛰어다녔다. 해가 저물면 편의점으로 돌아가 다시 컵라면을 붙잡았다. 나는 진짜 드럼을 연주하듯 컵라면 뚜껑을 두들겼고, 스틱의 팁을 어디다 놓아야 하는지. 컵라면을 치고 나서 손의 높이는 어느 정도 잡아야 하는지 가늠하는 것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가끔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 학생들이 나를 보고 킥킥거렸는데. 그럴 때마다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은 멍청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그 바보 같은 짓을 몇 주 내내 반복했다. 나는 형에게 언제 제대로 된 악기를 연주해볼 수 있냐고 물었지만, 형은 기본기도 없이 악기를 붙잡으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려 두 번 다시 고백 따윈 못해볼 거란 말만 반복했다.

“다운비트도 못 하는 놈이 무슨 배짱으로 드럼을 연주하겠다는 거야. 모든 악기의 시작은 기본기야. 복서도 마라토너도 주먹 한 번, 발자국 한 번 내딛기 전에 수천 번의 준비를 해. 기본적인 테크닉이나 기술들은 하루 만에 배울 수도 있겠지. 그런데 네가 그러면 악기 먼저 박살 낼걸?”

졸지에 실연당하게 된 나는 그 말들이 전혀 이해 가지 않았지만, 형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한 나는 드럼을 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묵묵히 컵라면에다 화풀이를 했다. 배고파진 내가 실컷 두들긴 컵라면 뚜껑을 열어 뜨거운 물을 받는 동안. 형은 드럼을 만지작거리더니 마트에 가서 새 컵라면을 사 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연습이 끝나고 나면, 형하고 같이 삼각 김밥을 뜯거나 라면을 같이 먹곤 했다. 몰골만 보면 사부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은 형이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조금은 친해지지 않았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가끔 왜 형은 편의점에 드럼을 가져다 뒀어요? 왜 편의점에서 지내고 있어요? 하는 궁금증을 묻곤 했지만 형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연습을 끝내고 돌아갈 때, 홀로 편의점에서 잠을 청하는 형을 보면 무언가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것 같았다.

방금 그 말은 취소. 그 거렁뱅이 자식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레슨비를 꿀꺽 삼키기만 하고, 드럼을 치는 법에 대해서. 전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기본기라면 질리도록 충분히 익혔어요. 이래 가지고 악기는 언제 연주해?”

“그러게.”

“형 정말 드러머 맞아요? 괜히 드럼에 대해서 아는 척하는 거 아니야?”

나는 딴청을 피우고 있는 형을 향해 반말 아닌 반말을 섞으며 따져댔다.

“아마추어긴 해도 드럼은 제대로 연주할 줄 알아.”

“아무어추가 뭔데?”

“좀 어설프지만, 열정을 가지고 프로가 되기 위해 배우고 있는 사람.”

“아, 형은 어설픈 사람이구나?”

나는 빈정거리듯 말하곤 드럼세트를 향해 다가갔다. 억지로라도 드럼을 쳐보려고 했다. 내가 드럼세트에 앉으려고 하자 순간, 형은 내 가슴팍을 쳐서 밀쳤다.

놀란 내가 형을 바라보자 형은 더 놀란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은 당황한 듯 허둥거리며 베이스 드럼을 챙겨 들더니 편의점 밖으로 뛰쳐나갔고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걸 왜 챙겨가요. 형?

밤이 될 때까지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형을 찾기 위해 주변 상가를 돌아다녔다. 십 분쯤 걷다 찾아낸 형은 드럼을 등에 진 채 상가를 배회하고 있었다. 

형은 무거운 듯 드럼을 내려놓았고, 상가를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형 주변에 몰려들었다. 

나는 형이 드럼을 연주하는 것을 구경하려고 했지만, 형은 드럼을 연주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드럼을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김빠진 사람들이 욕을 하거나 비웃으며 동전 몇 개를 형에게 집어 던졌다. 행인들이 흩어지고 잠잠해지고 나서야 나는 걱정스러운 듯 형에게 다가갔고, 형은 나를 보더니.

“야. 이 돈으로 어묵이나 사 먹자.”형은 노점에서도 드럼이랑 떨어지질 않았다. 드럼 때문에 좁아진 길거리를 행인들이 짜증을 내며 지나가도, 형은 억척스럽게 어묵만 씹어먹었다. 나는 종이컵으로 국물을 마시다 핀잔주듯 중얼거렸다. “형은 마치 소라게 같아요. 그게 뭐라고 계속 지고 다녀요.”형은 어묵을 삼키지도 않은 채 말했다. “너는 고릴라 같아.” 장난하자는 건가. 기분이 상한 나는 다 먹고 편의점으로 오기나 하라며 소리치고 뒤돌아섰다. 걷다가 다시 뒤를 돌아봤다. 형은 입에 종이컵을 문 채 드럼을 꼭 껴안고 있었다. 나는 윙크하듯 한쪽 눈을 감고, 양 두 손으로 사각형을 만들어 테두리 밖의 풍경을 날려버렸다.

사물을 관찰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러면 행인들은 사라지고 손가락으로 만든 사진 속에는 오로지 형만 남는다. 형은 두 눈을 밝혀 뜨고 무언가를 찾는 듯 더듬더듬 시선을 옮겨갔다. 그 세계는 아무도 두들기지 않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세계. 마치 누군가 연주해주길 기다리는 드럼 같은. 어째서 그 모습이 내게 오랫동안 남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며칠 뒤, 우연히 복도를 걷다 학교 게시판에 밴드부 부원을 모집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는 것을 봤다. 세계대전 모병 포스터를 패러디한 I Want you for band 문구가 인상적인 안내문이었다. 그 아래 Are you doing all you can? 문구를 나는 하나하나 곱씹듯 읽다 곧장 입부 신청서를 받기 위해 밴드부가 연습하는 강당으로 향했다.

“밴드부 신청하게? 잠시만. 우리 한 곡만 연습할 테니깐 우선 신청서 먼저 쓰고 있을래?”나는 보컬이 건네주는 신청서를 받아 벽에 대고 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첫 시작 치고는 잘 썼네. 등 뒤로 드럼 소리를 시작으로 밴드부의 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신청서를 쓰다 말고, 드러머를 구경하기 위해 뒤를 돌아봤다. 화려한 음색과 조명. 그리고 그 아래에 놓인 드럼과. 뱁새. 뱁새가 무대 위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었다. 나는 펜을 떨군다. 보컬이 마이크를 붙잡고 포효하듯 소리친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데. 어떤 새끼인지, 시나리오 쓰는 손이 떨려오고연주를 마친 밴드부가 환하게 웃는다. 뱁새가 나를 알아보고 웃는다. 단상 위 불행을 먹고 자란 입들이 환하게 웃는다. 무대 위에서 보컬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신청서 다 썼으면 나한테 줄래? 아니요. 아뇨. 죄송합니다. 잘못 찾아왔네요.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다시 연습을 시작한 밴드부의 노랫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열기가 어느 순간 짜게 식어가는데밤이 되었습니다. 매미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무대를 떠나주세요.

나는 집에서 오래된 철 필통, 물이 담긴 컵, 양은냄비 이런 것들을 꺼내와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드럼이 없어도 드럼을 때리는 시늉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냥 뭐든 붙잡고 때리면 똑같이 소리가 나니까. 나는 손 가는 대로 드럼을 두들겼다. 요란한 소리가 합주 없이 제 울음을 내질렀다. 순간 생목이 올라오는 것처럼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목을 콱 짓눌렀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발까지 힘껏 내 구르기 시작한다. 내가 있는 힘을 다해 때리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답답한 학교일까, 빌어먹을 꽃송이들일까, 아니면 재수 없는 그 뱁새 자식일까. 나는 드럼스틱도 내던진 채 뜨겁게 달아오른 주먹을 책상을 향해 실컷 내질렀다. 편의점 앞에 붙어있던 바닥이 타오르는 무대에서 드럼을 두들기는 드러머처럼. 아랫집에서 우리 집 현관문을 있는 힘껏 두들기는 것도 모른 채.

인대는 물론이고 뼈까지 가루가 되어버린 엑스레이 사진을 본 의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왼팔에 단단한 석고 깁스를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나왔을 땐 이미 꽃은 다 져버려 길거리에 잔뜩 흩뿌려져 있었다.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 꽃을 짓밟고 싶은 충동 따위는 들지 않았다. 반듯한 풀들에서 잘려 나간 잎파랑이 향이 가득했다. 풀이 다 꺾였네. 나는 깁스에 꽂아놓은 드럼스틱을 꺼내 공중에 붕붕 휘둘렀다. 마치 무슨 바람이라도 일으킬 듯이. 하지만 바람은 과속하며 달려 나가는 자동차가 일으켰고, 허공에 짓밟힌 꽃잎들이 휘날렸다. 나는 드럼스틱을 내려놓았다. Are you doing all you can? 네, 이게 최선이었어요.

나는 다짐이라도 한 듯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형은 드럼을 등지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때려치울래요. 애초에 드러머가 될 거란 생각도 없었어요. 원래부터 하고 싶은 것도 없었는걸요.” 형은 대꾸하지 않았다.

“드럼 때려치운다고요. 밴드부고 학교고 뭐고 그냥 싹 다 짜증 난다고요. 전부 지긋지긋해요.”쪽팔리게. 나는 울면서 드럼스틱을 집어던졌고, 스틱은 튀어 오르며 형 앞에 떨어졌다. 떨어진 드럼스틱을 집어 든 형은 나를 바라봤다. 형이 드럼스틱을 가지고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미 각오하고 왔다. 포기엔 대가가 따르니까. 하지만 형은 내 손에 드럼스틱을 단단히 쥐여주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드럼스틱과 형을 번갈아 바라봤다. 내 손을 형이 붙잡으며 말했다.

“대부분의 드럼스틱은 호두나무로 만든 히코리지. 하지만 이 드럼스틱은 달라. 단단하면서 묵직해. 하드락 메이플이라는 이름처럼 많은 헤비드러머들이 사용하는 재질이야. 힘찬 음을 낼 수 있는 대신 금방 지치고 둔해져. 연주는 싸움이랑 똑같아. 너처럼 무턱대고 주먹을 날리다간 네가 먼저 떨어져 나가는 거야.”네 꿈이 박살 났다고 생각해? 형은 내 석고 깁스를 만지작거리며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형은 바닥을 치우더니 드럼에 나를 앉혔다. 나는 오른손으로 붙잡고 있는 드럼스틱을 우두커니 바라만 봤다.

“어떻게 한 손으로 드럼을 연주해요.” 형은 남은 스틱을 붙잡고 심벌즈를 툭툭 치더니 손바닥으로 하이탐 드럼을 두들겼다.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드럼을 손으로 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드럼은 발로도 연주할 수 있는 거야. 손은 박자를 잡아주는 거고 폭발적인 속주는 발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빠르게 달려 나가듯이 두두두.”형은 풋 페달에 내 발을 가져다 댔다. 이게 베이스 드럼이야. 다리에 너무 힘주지 말고. 걷듯이 천천히 스텝을 밟아봐. 세상을 둘러보듯. 천천히. 일정하게. 그러다 워밍업이 준비되었으면 조깅하듯 조금씩 속도를 올리는 거야. 나는 풋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속도가 붙어가는 스노우볼처럼 음색이 빠르게, 크게, 커져갔다.

“드럼은 네가 그동안 달려온 모습을, 그리고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하는 거야. 드럼은 그걸 힘찬 울림으로 바꾸어 전할 뿐이지. 내가 이만큼 꾸준히 뛰어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드럼은 밀어내는 게 아니야. 쳐서 울림을 만드는 거야. 네가 말하고 싶은 울림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드럼을 치는 거지 밀어내기 위해서 드럼을 치는 게 아니란 말이야.”나는 그걸 구분하지 못해서 아마추어인 거고. 풋 페달에서 발을 뗀 나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형의 눈을 바라봤다. 형은 내 시선을 피하며 드럼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나는 치는 것과 밀어내는 것을 구분하지 못해. 사고로 귀가 먹었거든. 그래서 내가 드럼을 연주하면 악기에선 탁한 소리가 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드럼을 연주했어. 다시 시작해보자고 나를 응원해준 사람부터, 오래된 희망까지 모조리. 계속해서 밀어내고 있었던 거야. 그러다 우연히 이 거리에서 데프 레파드의 히스테리아를 듣게 되었어. 저 포스터 속 릭 앨런 말이야.

“뭐하는 사람인데요?”나는 애써 눈물을 훔쳐내며 중얼거렸다.

“밀리언셀러의 외팔 드러머.”형은 동영상 하나를 틀어 내게 보여주었다. 팔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두발을 이용한 릭 앨런만의 특이한 연주. 여섯 개의 풋 페달을 이용한 신나는 드럼 비트와 장쾌한 코러스가 편의점 안에 울려 퍼졌다. 불같이 달려 나가는 릭 앨런.

“사내자식이 팔 하나 부러졌다고 징징 짜는 건 아니지?”나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퉁명스럽게 형에게 말했다.

“밀어내는 것도, 치는 것도 싫다면요?”“그러면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TACET 하는 법도 있지. 그냥 나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침묵하고 있는 거야. 때때론 필요하지만, 썩 좋은 방법은 아니지. 충돌도 없지만, 접점도 없어. 그럼 드럼처럼 텅 비어버리는 거야.”한동안 나는 드럼을 연주하는 대신 드럼스틱을 들고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는 드럼을 연주하지 못했고, 치는 것과 밀어내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잘못된 것을 문제집으로 내려치는 사람? 시작도 해보지 않고 도망치는 사람? 알 수 없어져 거리를 뛰기 시작했다. 조깅을 하며 주먹을 날리는 복서처럼, 길거리를 뛰어다니며 텅 빈 세상을 향해 드럼스틱을 휘둘렀다.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툭툭 두들기며. 멍청한 외팔 드러머를 향해. 여기 내가 있다고. 요란한 세상을 울려댔다.

오랜만에 찾은 편의점은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편의점 간판은 새것으로 교체된 채 밝게 빛나고 있었고, 매대에는 물품들이 채워져 있었다. 나는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편의점 입구에 붙어있는 이달의 행사제품 목록을 보고 우뚝 멈춰 섰다. 바닥에 찢어진 릭 앨런의 포스터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편의점 문을 열며 밖으로 나왔다.

형은 온데간데없고 깔끔한 유닛폼을 입은 한 노인이 지긋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노인의 어깨너머를 아무리 살펴봐도 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 안에서 CM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지내던 사람을 못 봤냐 물었고,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가 이제 입점하게 되어서 여기 있던 사람한테 자리를 빼 달라 그랬다. 멋대로 남의 가게에서 숙식을 해가지고 신고하려 그랬더니만, 사람이 딱해 보여서 그냥 가라 그랬어. 이게 뭔 일이람 참.”나는 형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는 유독 어둡고 차가웠다. 아무리 뛰어도 숨이 차지 않았다. 갑자기 세상이 낯설다 느껴진 건 십 분 정도 뛰었을 때였다. 거리엔 사람은 물론 자동차 한 대 지나가지 않았고, 공원의 가로등은 모두 꺼져 있었다. 초저녁인데도 주위는 어두웠고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달리는 것을 멈췄다. 헐떡거리던 숨을 몰아쉬고 나니 곧 모든 것이 침묵에 휩싸였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무리 소리쳐도 들어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깐. 귀가 멀어버린 기분이었다. 함부로 길을 고르면 안 되지만 나는 어느 곳이든 닿고 싶어 뛰었고, 그럴 때마다 갈림길이 나왔다. 나는 처음 편의점으로 향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드럼을 세차게 두들겼던 순간을 떠올렸고, 달리기의 보폭을 떠올렸다. 심장이 뛰는 방향을 좇아 뛰자벤치에 앉아 있는 형을 만났다.

“왜 여기 있어요.”그냥, 여기가 가장 고요하고 조용해서. 형 옆에는 드럼 세트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았다. 여기, 마치 드럼 속 같지 않아? 형은 어딘가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고로 귀가 들리지 않았을 때의 일이야. 아무리 드럼을 쳐도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없어 이젠 다 글러 먹었다 생각했지.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이었어. 연습실 불은 다 꺼져있고, 창으로 밤의 그림자만 일렁거리고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주위를 둘러보니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 연습실 벽에 붙어 있었던 거울하며 내가 앉아 있던 드럼까지 모조리 싹 다. 신기했던 건 나 자신의 감각만은 또렷했어. 그때 생각한 거지. 아, 내가 지금 드럼 속에 있는 거구나. 둥글고 커다란 베이스 드럼 안에 누워있구나. 둥글고 커다란 드럼 안은 시작도 끝도, 위도 아래도 없었어.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니 지구가 돌아가는 게 느껴지고, 아직 나는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혹시 소주 한잔했어요?”내 말에 형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하늘을 바라봤다. 어쨌거나 나는 그 뒤로 쭉 드럼에 갇혀 살았어. 소리도 빛도 없는 그곳에서 멍하니.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이제 슬슬 드럼 밖으로 나가야지 생각하는데 나갈 수가 없는 거야. 나 여기 있다고. 누군가 나 좀 꺼내 달라고 아무리 악을 써도 나는 드럼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 그런데 누군가 드럼을 연주했어. 미친놈처럼 말이야. 나는 그 미친놈 덕분에 그곳에서 이끌리듯 울림이 되어 빠져나왔고 내 드럼 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거지. 이해하겠어? 나는 왜 어른들이 말을 어렵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좀 쉽게 이야기해주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나. 말에서 술 냄새 나요. 편의점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뭘 그렇게 어렵게 해요. 아냐, 나는 진작 그곳에서 벗어났었어. 이제 내 드러밍은 끝난 거야. TACET 따위 더는 하지 않을 거야. 더이상 드러밍 하지 않는다고요? 응, 언제까지나 멈춰 연주하는 건 불가능하니깐. 이젠 네 차례야.

순간 꽃들이 피어나듯 가로등의 불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고, 어둠을 향해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다운비트도 TACET도 드러밍도 모두 어렵기만 했다. 있잖아, 내가 저번에 너 고릴라 닮았다고 했잖아. 그거 사실 맞는 것 같아. 고릴라는 가슴을 쳐 북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만들잖아. 위협할 때도 양손으로 땅을 짚으며 달려가다 허공에 주먹질하며 소리를 지르는 게 딱 우리 모습이잖아. 듣고 있어? 듣고 있는 거지? 야. 우냐? 울어? 이상하리만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빌어먹을 봄은, 대신 이상하리만큼 뜨거운 여름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센서등의 불빛이 집안에 쌓여있던 어둠을 깨끗하게 치워냈지만, 적막은 지우지 못했다. 부모님은 외출하셨는지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라디오를 틀고, 텔레비전으로 벅벅 지워내려고 해도 남아있는 적막. 나는 마지막으로 노트북 전원을 켜, 유튜브에 들어가 릭 앨런의 드럼 영상을 틀었다. 백발의 노인이 되었는데도 외팔로 드럼을 치는 릭 앨런. 나는 찢어진 릭 앨런 포스터를 벽에 붙였다. 그리고 벽화 앞에서 모닥불을 쬐는 원시인처럼, 씻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 나는 이어폰을 낀 채 한참 릭 앨런을 바라봤다. 릭 앨런과 내가 뒤섞여버리는 것 같다. 나는 무슨 각오라도 한 듯 유튜브를 뒤적거린다. 당장이라도 누우면 잠을 잘 것만 같은데 정신은 맑았다. 부모님이 돌아오신 것도 모른 채.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드럼 영상을 찾아봤다.

평소처럼 변함없이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교복을 입으며 책상 위에 가지런하게 놓인 드럼스틱을 집어 들었고, 운동화를 구겨 신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집 밖으로 벗어나니 뱁새가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고 있었다. 뱁새는 내 뒤통수를 치며 “대단한 예술가 씨잖아?” 라고 빈정거리듯 웃으며 학교를 향해 사라졌다. 나는 사라져가는 그놈의 뒤통수를 바라보다 녀석의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1층 자전거 보관대에 쇼핑백과 함께 묶어둔 드럼을 꺼냈다. 학교로 질질 끌고 가는 드럼은 이따금 통통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1교시가 시작할 시간이었고, 이미 학교 정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나는 철문 사이로 드럼을 비집어 넣고 높은 담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착지가 잘못되었는지 나는 떨어지며 왼팔을 바닥에 세게 부딪혔다. 상관없었다. 아직 두 발이 남아 있으니. 나는 운동장으로 드럼을 끌고 가 하나하나 세팅했다. 정리된 드럼에 앉아 오른손으로 가볍게 탐을 두들겼다. 장쾌한 소리에 창가 쪽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른팔로 드럼을 두들기자 맑고 강한 소리들이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빠르게 풋페달을 밟았다. 베이스드럼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쿵쿵! 더 많은 학생들이 창가에 달라붙었다. 고개를 들어 학교를 바라보니 뱁새가 웃기다는 듯 스마트폰으로 나를 촬영하고 있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보란 듯 더 빠르게 드럼을 연주했다. 담임선생님이 창문에 몸을 내밀고 내게 뭐라 소리를 질렀지만, 학생들의 함성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몇몇이 휘파람을 불었고, 몇몇은 야유를 보냈다. 햇빛이 조명처럼 운동장을 향해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더욱 가속해서 페달링 했다. 드러밍, 드러밍! 미처 지지 않은 봄꽃들이 바람에 휩쓸리며 휘날렸고, 바람과 같이 흐트러진 햇살에 오감이 길게 늘어져 갔다. 조명과 무대, 그리고 관중. 드럼스틱을 쥐고 있는 나. 그리고 하나의 무대. 호흡이 가팔라지며 머리끝까지 드럼 소리가 가득 차올랐다. 체육 선생님이 운동장으로 달려와 나를 끌어내기 전까지. 나는 드럼을 연주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박수처럼 비가 운동장에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학교가 한차례 뒤집혔고, 나를 알아보며 드럼을 연주해달라는 학생들과, 대놓고 비웃는 사람들을 한동안 마주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금방 잊혀졌다. 마치 잠깐 꾸었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깐. 대신 다른 학생들이 운동장 벚꽃나무 옆에 자리를 잡은 드럼을 점심시간마다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점심시간마다 창문으로 바라봤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은 더 이상 투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아홉수의 청춘을 다 보내고 나서야, 좁은 교정을 드럼에게 비켜주었다.

교복을 벗고 나니 더 이상 이 세상에 불만 따위는 가지지 않게 됐다. 나는 소설가가 되지도 못했고 드러머가 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세상이 망하는 건 아니었다. 막상 아무것도 아닌 채 어른이 되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단지 꽃냄새가 그리워지고 봄이 가까워지면 가슴이 들뜨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봄 내음에 눈을 감고 꽃을 손가락으로 그리며 내가 잊어가고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어른이 되면 망각하는 걸까.

드럼을 배운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드러밍과 드리밍은 무언가 한 끗 차이라는 것을, 나는 늦게나마 알게 되었으니깐. 봄의 반이 지나가면 나는 내 안의 어딘가 남아있는 드럼 소리를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는 연주를 생각한다. 요즘은 취미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새벽 공기를 일정하게 들이마시는 것과 내뱉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행복이다. 꾸준히 달려 나가면 어딘가에 도착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게 막다른 골목이든, 다시 투명하게 비어버린 편의점 앞이든 말이다. 새벽 길거리에 희붐한 빛이 가득 차오르면 나는 운동화 끈을 묶고 밖으로 향한다. 보도블록을 박차고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간다. 달려가는 내 모습이 그대로 발바닥을 통해 전해진다. 텅 빈 마음으로 세상을 두들긴다. 발바닥의 울림 때문에 심장이 쿵쿵 뛴다. 심장이 가는 대로. 마음이 두들기는 대로. 이 연주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심장 박동에 맞춰 보폭이 점점 빨라져 갔다. 

그러다 보면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이고, 짊어졌던 껍질을 훌훌 털어버린 민달팽이 두 마리가 길 위에 마주 서 있다. 느려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반짝거리는 길을 길게 늘어뜨리는 달팽이 두 마리. 나는 웃으며 중얼거린다. 킥, 킥, 킥 베이스 페달링! 온 도시를 연주하는, 드러밍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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