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신사 뿌리 찾고자
우리네 생 해녀 생과 같아
모든 ‘자기 언어’가 시 돼

>> 전지적 제주 작가 시점 < 9 > 허영선 시인

허영선 시인

허영선 시인은 제주대학교 강사와 제주4ㆍ3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한다. 채록한 목소리는 역사서 <제주 4ㆍ3을 묻는 너에게>, 동화 <애기해녀 옥랑이 미역 따러 독도 가요!>, 시집 <해녀들> 등 다양한 장르로 펴냈다. 지금은 바다 건너 이주민이 됐건 세상을 떠났건 그는 직접 발로 뛰며 찾았다.

허 시인이 구술 채록을 시작한 계기는 그가 기자로 활동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대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는 기록자의 운명을 느낀 그는 사람들을 만났다. 정확히는 ‘추적’했다.

“자료가 너무 없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제주의 독립운동가 강평국 지사부터 해녀 항쟁의 주역들, 4ㆍ3의 여인들까지. 그 이유에서인지 당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만나고 싶었다. ‘어떤 정신이 뿌리가 돼 오늘까지 이어졌을까’, 나아가 ‘근현대에 들어 제주 여성들의 정신사적 지맥으로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의 물음을 지녔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하는 마음이 강렬했다.”

사람의 흔적을 찾아 나섰지만, 채록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시집으로 옮기는 작업은 더 까다로웠다. 그는 채록 과정에서 경험한 어려움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구술자의 시간, 두 번째는 면담자의 시간, 세 번째는 아쉬움과 한계다. 한 사람의 생애를 만나고 한 생애를 가장 축약된 언어로 짧은 시편에 담는 일은 만만치 않다. 신문의 지면과는 또 다른 기록이다. 하지만 응축되는 시 속에 꼭 전 생애를 기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를 통해 그 사람의 생애를 더듬어볼 수 있고 만져볼 수 있으면 된다. 시에서 삶을 짐작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성취했다고 본다. 감춰진 이야기를 조금 더 드러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여러모로 특별한 시도였던 것 같다.”

허 시인은 <해녀들>에서 ‘잠녀’, ‘잠수’ 등 해녀를 일컫는 명칭 대신 구술자의 이름 석 자를 기재했다. 이 역시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역사 속 해녀를 조명하기 위해서다.

그가 들여다본 해녀의 삶은 어땠을까.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바다에 들겠는가”, <해녀들> 2부의 부제목이자 그들 삶 전체다.

허 시인은 “물질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행위다. 이들의 생존 자체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한 끼’를 위한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바다에 몸을 던지는 이유다.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다. 감내하는 삶을 지켜보며 금방 포기하고 엄살을 부렸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했다”며 ”어쩌면 우리네 생은 해녀의 생과 그리 멀지 않다. 단지 사투를 벌이는 공간이 물 위이거나 아래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오랜 시간을 들여 제주 바다와 마주한 그는 해녀들이 “물에서 시를 쓴다”고 말한다.

“하나의 응축된 언어로 상징하는 것이 시이고, 그 안의 내용을 이미 이 사람들은 갖고 있다. 그야말로 시는 자기 언어다. 물속에서 눈물을 흘리면 눈물의 시를 쓰는 것이고, 사투한다면 사투가 곧 시다. 그들은 자기 언어를 물질로써 내뱉었다. 시에는 치장할 대단한 옷이 필요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 계획을 묻자 허 시인은 “여전히 ‘말’할 수 있는 좋은 시를 쓰고 싶다”며 시 쓰기에 몰입하고픈 바람을 드러냈다. 이어 “시대의 목소리들을 채록하는 작업을 이어가며 아직 드러나지 못한 목소리들을 찾아 나설 것”이라며 호기심 가득했던 기자 시절과 변함없는 소명 의식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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