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신이 있었다. 신은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들에게 세상을 주었다.
 지혜의 신 ‘아테네’는 ‘지혜’를,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바다’를, 질투의 신 ‘헤라’는 인간들에게 ‘질투’의 감정을 선사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듯 많은 인간들은 신에게 의미를 부여받고 창조되어졌다.
 형이상학적이고 믿겨지지 않는 이 모든 이야기들은 ‘신화’라는 카테고리 속에 연결되어 각 나라와 지역에 존재해왔다. 아주 먼 옛날, 인간이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말이다.
 그리스에 ‘로마신화’가 존재하고 있다면 제주도에는 어떤 신화가 존재하고 있을까?
 지난달 27일 문화역사만들기 북제주군추진협의회의 주최로 열린 ‘불휘공 송당마을 신화축제’를 찾아갔다. 올해 처음 열린 이 행사는 불휘공(태초의 뿌리)이라 불려온 제주신화의 뿌리를 찾아 보는 행사로 제주신당의 메카인 북제주군 구좌읍 산간마을인 ‘송당마을’을 중심으로 개최됐다. 오전 10시, 신화축제기행을 시작하기 위해 집합장소인 ‘신산공원’을 찾았다. 주최측에서 마련한 행사 버스 안은 부산에서 온 민속학자와 신화에 관심 있는 도내외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기행의 첫 번째 코스로 찾아간 곳은 한라산. 이날 사회를 맡은 문무병(문화역사만들기 북제주 추진위원회)위원장은 “그리스 로마신화로 따지면 한라산은 ‘올림푸스산’에 속하는 곳”이라며 “제주 신들이 태어나고 시작된 곳이므로 기행을 시작하기에 의미 있는 곳”이라 고 기행지를 설명했다. 30분가량 걸어서 도착한 ‘어승생악정상’에서 행사축원과 무사안녕을 위해 ‘한라산신제’가 진행됐다. 조촐하게 차려진 음식을 앞에 두고 할아버지 한 분이 신들에게 행사를 고한다. 한라산 신인 ‘하루산또’에게 노래하듯 축문을 읊는 할아버지의 표정이 사뭇 긴장돼 보인다. 하루산또의 ‘또’는 신들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풀이하자면 ‘님’이란 뜻이다. 창조의 신 설문대할망이 500명의 아들을 낳아 팥죽을 쑤어 먹였다는 곳 ‘한라산’. 신화기행 행사를 축원하는 축문이 한라산 골짜기를 흘러흘러 많은 신들에게까지 전해졌으리라.
 ‘한라산신제’에 이은 행사는 ‘신당기행’이다. 제주의 많은 신들을 모셔놓고 제를 지내는 집인 신당은 1만6000신들이 존재한다는 제주도에 유난히도 많다.
 당이름은 본향당(本鄕堂), 일뤠당(七日神堂), 여드렛당(八日神堂), 해신당 등으로 불려진다. 당의 명칭은 ‘상가리 오당빌레 송씨할망당’처럼 마을명, 지명, 제일(祭日) 또는 신의 성씨나 성별을 따서 붙여지곤 한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송당당신의 12번째 아들을 모셨다는 봉개동 동회천 마을의 신당. 250년 된 커다란 팽나무 신목 아래로 재단을 올리는 넓적한 돌 선반이 있다. 크기를 맞춰 자른 듯 반듯한 돌 선반이 특이하다. 송당당신의 12번째 아들을 모신 이 곳 신당에는 재밌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었다. 어릴때부터 공부는 안하고 사냥만 즐겨해 쫏겨난 12번째 아들이 떠돌다 이 마을을 발견해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집에서 쫓겨나 자신의 살 곳을 찾아 정착한 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인간과 별 다를 게 없는 듯해 재밌다.
 이어 찾아간 신당은 조천읍 와흘리 동쪽 한길가에 위치한 ‘하로산당’이다. ‘노늘산신또’와 ‘하로산또’ 부부 두 신위를 모시는 당이어서 ‘노늘당’이라고도 불리는 이 당은 두 명의 신이 모셔진 특별한 곳이다. 이곳은 먼저 좌정한 신이 나중에 온 신을 내쫓는게 보통 이다. 그러나 이곳은 나중에 온 신이 전에 있던 신의 자리를 내쫓은 특이한 곳이다. 또한 부부신을 모시면서도 제단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삼사백년 된 큰 팽나무 두 그루가 있어 신령한 위엄을 느끼게 하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당이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북제주군 김녕리에 위치한 ‘궤네깃당’. 백주또의 6번째 아들이 모셔진 이 곳은 자연동굴인 궤네기굴이 있어 선사유적지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돼는 다른 신들과 다르게 이 곳 신당에 모셔진 ‘궤네기또’는 돼지를 통째로 받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특이한 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굿을 지낼 때 돼지고기를 바치는 ‘돗재’를 지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김녕 ‘본향당’이다. 여기에 모셔진 신은 여성신으로 ‘하로산또’와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다른 신당과는 달리 깔끔하게 정돈된 것이 특징이다.
 신당기행에 이어 찾아 간 곳은 ‘아부오름’이다. 송당마을과 당오름 남쪽에 있어 ‘앞오름’이라 불리는 이 곳은 마치 가정에서 어른이 믿음직하게 앉아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아부오름’이라 불리고 있었다. 비탈진 오름을 올라 산정에 도착한 오름 산정에서는 송당마을 사람들이 직접나와 ‘테우리코사’를 한창 치르고 있었다. ‘테우리’는 방목하는 말이나 소를 돌보는 사람을 가리키는 사투리다. 이 ‘테우리 코 ’는 풍요로운 목축을 기원하고 테우리들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는 고사다.
 제주신앙의 대표적인 곳으로 많은 신들이 찾았던 송당 마을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많은 신들이 이곳을 찾았던 이유를 짐작 할만하다. 이곳 사람들의 얼굴에는 신들마저 따를만한 순박하고 인자한 웃음이 넘쳐났다. 신화가 없는 국가는 불행한 민족이다. 신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역사적 시간의 뿌리이며, 그 역사의 시간을 가능케 한 역동적인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우리 신화를 서양의 잣대로 재단하고 억압해왔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신화를 찾고 그 속으로 들어갈 때다. 신화 속에는 앞 세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있고 우리만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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