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월 나이 서른다섯이던 해에 ‘살려고 후다닥 내달린 밭담 안에서 누가 날렸는지 모를 날카로운 한발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턱’. 당신은 진아영 할머니. 날아 간 턱을 무명천으로 감싸 지내 ‘무명천 할머니’라 불리는 당신. 55년 한많은 세월, 고단한 육신, 가까운 혈육에 업히지 못하고 마지막 길을 가신 할머니, 참 가련하고 가련타.
지난 8일 제주 4·3사건때 북제주군 한경면 판포리에서 경찰이 발사한 총탄에 턱을 잃은 진아영 할머니가 영면했다. 진 할머니는 생전에 무명천으로 얼굴을 감싸 ‘死(죽음)·삶’의 기로에서 얻은 상처를 내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역사가 빚은 비극을 고스란히 진 할머니가 이고 갔다.
진 할머니의 잃어 버린 턱은 4·3의 비극이고 무명천은 4·3 희생자들과 후유장애인들의 눈물이었다. 이처럼 진 할머니는 4·3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대변해줬다. 그런 할머니가 마지막 길도 쓸쓸히 가셨다는 소식에 비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진 할머니는 55년전의 일로 턱을 잃은 채 귀가 멀고, 말을 잊어버린 채 살아왔다. 따뜻한 밥, 목을 축일 물 한잔을 들이키려 할 때도 남몰래 숨어 억지로 넘겨야 했다. 진 할머니의 한 많은 삶을 노래한 한 시인은 ‘울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울음이 되는/ 그녀, 끅끅 막힌 목젖의 음운 나는 알 수 없네/ 가슴뼈로 후둑이는 그녀의 울음 난 알 수 없네’라고 묘사했다.
최근 정부는 공권력의 잔혹한 칼날에 관해 규명 작업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히 제주4·3사건과 관련해 머리를 조아렸다.
정부는 그 값어치라며 4·3후유장애인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진 할머니도 55년 한많은 세월의 보상금으로 돈 8백여 만원을 지원받았다. 원하지도, 알지도 못한 사이 온몸을 괴롭힌 심장질환과 골다공증. 진통제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이마저 삶이 돼 버린 진 할머니의 한 평생을 고인이 된 지금 가슴 아프게 떠올려 본다.
돈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할머니의 한은 이 시대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겨졌다.
4·3진상규명·명예회복·후유장애자의 보상 등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4·3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애써왔다. 그러나 아직도 역사를 왜곡하려 하고 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는 게 슬프다. 여전히 4·3에 관해 빨간색 덧칠을 하려 드는 자들로 인해 피해자들은 오히려 죄인처럼 숨어지내고 있다.
영면한 진 할머니의 소식에 그동안의 무지함이 부끄럽다. 그러기에 새삼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 둔 상처를 쉽게 꺼내지 못하는 한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한을 이제는 우리가 대신 풀어 줘야 한다는 다짐이 선다. 비극의 역사를 한으로 이겨낸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진 할머니의 삶과 죽음은 아직도 그늘진 곳에 놓여있는 4·3휴유장애인의 처지를 비롯해 4·3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들의 눈물을 딱아주기 위해, 그들에게 무엇으로 보상해 줄 것이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진아영 할머니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송지은 지역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