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아나키스트’는 1920년대 중국 상하이를 무대로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하던 5명의 아나키스트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영화는 실제 항일 비밀 결사체인 의열단의 활약상을 그린 것이다. 의열단은 3.1 운동이 일어나던 해 김원봉이 베이징에서 조직해 주로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투쟁단체이다. 그때 당시 3명의 조선인 무정부주의자 청년들이 중국내 항일무장투쟁 단체인 의열단에 가담해 활동하던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과거 아나키즘은 폭력이란 형태로 자신들의 주장을 나타냈지만 현재 그 모습은 많이 변해 있다.
 일례로 지난 1999년 11월 29일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저지하기 위해 수천명의 활동가들이 시애틀에 도착했다. 그들은 세단과 리무진을 타고 ‘엑서비션 센터’에 도착할 예정인 각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위는 과거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최루가스나 무기를 들었던 손에는 현수막, 치즈 등이 들려져 있었다.
 반자본주의 시위에서 이런 장난기 섞인 비폭력 전술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활동가들은 온몸에 흰색 천을 뒤집어쓰거나 모의제복을 입고 나타났다. 시애틀 시위가 있은 지 1년이 채 안된 지난 2000년 9월 체코 프라하에서 국제통화기금(IMF)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시위자들은 요정처럼 차려입고 깃털로 만든 먼지떨이를 들고 나타났다. 깃털 먼지떨이는 중무장한 경찰들을 간질여피는 무기 아닌 무기로 사용됐다.
 위의 사건들을 저자인 아일랜드 출신 아나키스트 숀 쉬한은 ‘아나키즘의 부활’이라고 말한다.
 ‘아나키즘’. 다소 생소한 단어일 수 있다. 아나키라는 말은 고대 아나르코스에서 유래했다. ‘지도자가 없음’ 또는 ‘정부가 없음’을 뜻하는 이 단어의 어원은 아나키즘의 특징을 암시한다. 단일 국가의 중앙집권화한 권위의 필요성에 대한 거부다. 아나키즘이 거부하는 것은 정부 그 자체가 개념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복종할 것을, 그리고 필요하다면 국민들에게 생명을 바칠 것을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주장하고 요구하는 주권질서의 관념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한 예로 전쟁을 들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수백만 명의 생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 결정을 내리며, 텔레비전을 통해 확정된 정책을 공표한다. 그 어떤 국민투표도 실시되지 않는다.
 이는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이 현재 우리나라의 이라크 파병을 예로 들 수 있다. 국익이란 명분 아래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속으로 뛰어들게 했다. 반대시위는 말할 것도 없고 파병 문제로 이라크에서 무고한 생명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파병을 결정했다.
 아나키즘이 정부형태로서의 국가를 거부하는 데는 구체적인 이유들이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격언을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권력이 집중되고 무책임하다면 어떤 체제의 정부가 들어서든 반드시 결함을 갖는다는 전제에서 아나키즘은 출발한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들은 민주적인 사회에 대해서도 이러한 전제를 견지한다. 소수의 엘리트 계급이 정치사회적 통제를 행사하는 능력을 갖는 것도 무책임한 권력의 또 다른 형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무법의 야만주의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국가’라는 견해를 거부하며, 자유민주주의 정치기구는 정교한 은폐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와 관련해 자본주의의 이면에 숨겨진 엘리트들의 경제 지배의 실상을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아나키즘 스펙트럼의 두 끝을 ‘공산주의(코뮌주의)적 아나키즘’과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본다. 아나키즘 안에 코뮌주의와 개인주의가 두 개의 본질처럼 들어 있는 까닭에 두 이념의 방향에 따라 아나키즘의 색깔이 확연히 나눠진다. 또한 두 극단의 사상적 뿌리를 보여주는 인물로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니체를 들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1870년대에 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던 아나키즘의 대부 바쿠닌을 탄핵했으며, 니체는 당시의 사회주의 조류를 ‘해로운 환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도 저자가 두 사람을 아나키즘의 원류에 포함시키는 것은 이들이 아나키즘의 철학적·사상적 기초를 놓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년 마르크스의 인간과 세계 이해, 곧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변화할 수밖에 없으며, 특히 인간이 세계를 바꿔나감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아나키즘의 철학적 바탕을 이룬다. 니체의 ‘권력의지’, 곧 자기실현 충동은 아나키즘 중에서도 개인주의적 흐름에 철학적 표현을 풍부히 제공했다. 니체에게 개인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하고 극복하는 존재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니체가 서로 대립하는 면이 있지만 동시에 공유하는 면도 있으며 둘 사이의 긴장은 서로 강조점을 달리하는 아나키즘 내부의 노선들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아나키즘을 신념과 원칙들의 조합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것이라 했다. 자유롭게 스스로 창출되는 비위계적이고 탈중앙화 조직, 연대, 행동양식들이 바로 아나키즘이며, 이런 것들이 바로 아나키즘을 혁명적으로 만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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