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단순한 의미인 ‘거울’ 이상으로 우리에게 추억을 선사하는 ‘사진’.

 이러한 사진은 처음부터 원본을 다량으로 복제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사진의 처음 출발은 단 한 장의 현실 복사물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현대의 사진술처럼 대량복제가 가능하게 된 것은 영국의 아마추어 작가인 ‘윌리엄 헨리 폭스 탈보드(W. H. Fox Talbot)의 사진술 발명 덕택이다.

 사진술의 발명뿐만 아니라 사진가로서 탁월한 재능까지 보였던 그는 영국 상류층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란 그는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고 사진술의 발견도 여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1823년과 1824년 이태리를 방문한 그는 수세기 전부터 화가들이 즐겨 사용해오던 도구이자,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 계층들이 놀이 기구 정도로 즐겨 사용하던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로 스케치를 시도했지만 작동이 쉽지 않고 더군다나 사진 찍는 솜씨조차 서툴렀던 탓에 만족할 만한 그림을 얻을 수 없었다.

 이에 탈보드는 보다 손쉬운 스케치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했고 영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종이에 감광성을 주는 실험을 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1839년 1월 감광성 성분이 있는 종이에 직접 물체를 올려놓고 햇빛에 의해서 서서히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이로써 그는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사물을 햇빛에 노출시킴으로써 마치 도장을 찍듯이 빛에 의해 흔적을 남겨 이미지를 영구히 보존하는 방법을 발명한다.

 또한 탈보드는 종이에 피라핀이나 밀랍을 입힌 종이 음화를 사용했기 때문에 다량의 사진복제까지 가능케 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사진의 대량 복제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현실을 거울처럼 선명하게 비춰주는 재현능력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탈보드의 사진술 발견은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사진 촬영에 몰입했고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을 만큼의 훌륭한 사진들을 선보였다.

 오늘날 영국 과학박물관에는 탈보드가 개인적인 취미로 찍은 가족이나 친구, 고향 라콕 아비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하인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여러 장 보관돼 사진술발명가 외에 사진가로도 활동했던 그의 업적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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