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모카 마시히로 지음
 이창익·조성윤 번역
 모멘토 출판 

 리모콘 하나로 손가락만 까딱하면서 TV를 시청하고, 무언가 필요하면 ‘엄마, 물’ 하고 소리지르면 갈증을 해소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TV를 시청하면서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멍하게 있는 우리들. 육체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 육체의 쾌적이 정신의 쾌적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 사는 우리들. 가까운 거리도 걷지 않고 차로 이동하길 즐기고, 안락한 삶으로 인생을 소모하고 있는 우리들. <무통문명>은 우리들에게 이런 나태함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일본인이 3만 불 소득 속에서 누리는 문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만 불 소득을 넘어 쾌적한 삶을 찾아 나선 우리에게 곧 닥칠, 그리고 지금 진행하고 있는 우리의 문명을 들여다 보며 반성하게 만든다. 우리가 찾아가야 할 문명의 길을 일러주고, 지금 우리의 길을 궤도 수정하게 만드는 처방전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은 ‘스스로를 가축으로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인공환경 속에서 사육되는 가축처럼 우리도 사육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쇠고기의 품질관리를 하듯이 우리 인간도 품질관리를 하고 팔려가길 기다린다고 한다. 그렇다. 요즘 우리는 육체를 메만지는 데 돈을 쓰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영혼을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다. 유명 미장원에 가서 한 번 머리를 메만지는 데 5만 원이 들어도 당연하다고 하면서, 정작 책 한 권을 사는 데는 인색하지 않은가. 우리의 어머니들은 딸을 좋은 곳으로 팔아넘기기 위해, 코를 높이고 쌍거풀 수술을 하느라 수천만 원을 쓰고 있다. 대학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적정한 곳으로 팔아 넘기기(시집 보내기) 위해서는 대학 정도는 나와야 한다고 자식들을 다그친다. 아이의 특성이나 취미나 소질은 상관이 없다. 좋은 간판만이 필요하다. 결국 한국의 젊은이들은 부모에 의해 품질관리 대상인 가축에 불과하다. 돈 있고 권력 있고 가문이 대단한 집으로 팔려가면, 다시 쾌적한 삶은 계속될 수 있으니까. 결국 무통문명이란 이와 같은 육체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살고 있다. 문득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서도, 주말에 교회에 가서 절에 가서 하루 동안 참회하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고 믿고, 자신을 ‘해독(解毒)’하면서 또 죄를 짖고, 우리의 영혼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자신의 잘못에 눈을 가리고 있고, 물론 남의 잘못에도 눈을 가리고 있다. 외부의 잘못에 대해서는 “저건 내 책임이 아니야”라고 자신을 위안하는 가식의 문명 속에 놓여 있다. 약간의 선행을 하고 “남을 돕고 있다는” 자기 합리화로 자신을 위안하고 있다. 그 자기 위안은 진정한 고통의 치유가 아니라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드는 ‘마약 같은 문명’이 아닐까. 우리의 현대적 삶은 무통문명을 지향하고 있는데, 실은 도처에 치유할 고통은 남아 있는 채, 마약 같은 문명에 취해 그 고통을 잠시 잊고 있을 뿐인 상황이다.

  그래서 현대인에게 자아는 없다. 마약에 의해 고통을 잊고 사는 ‘도취된 자아’만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런 자기 기만의 문명이 아메바처럼 확산되고 있다고 경고 하는데, 나는 이것이 진통제의 수준을 넘어서 ‘마약의 확산’이라 보고 싶다. 몸은 악화되는데 진통제를 투여하고 있고, 정신은 황폐화되는데 신경 안정제만 투여하고 있는 문명, 더 나아가 환각제와 같은 마약을 마시며 인생을 쾌적하게 만들고자, 쾌락을 추구하고자 날뛰는 문명이 도처에 그득하다. 이 책은 그 치유책을 ‘생명의 기쁨’에서 찾고자 한다. 기쁨은 고통이 있음을 알고, 그 고통을 스스로 이겨나가면서 이루어진다고 설파한다. 고통을 피하지 말고 그 고통에 도전하고 고통이 삶의 중심에 있음을 알 때, 자기를 ‘중심축’에 놓는 삶이 이루어지고, 이때 생명의 기쁨이 피어난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의 근대문명에서 인생과 생명과 자연조차 관리되고 있다고 하면서, 심지어 ‘지속 가능한 개발’이나 ‘자연 보호’도 가축을 관리하는 것과 같은 관리의 일종이라고 비판한다. 인간의 독선과 기만을 향해 이처럼 시원하게 한 방 먹이는 글이 있다니 정말 놀랍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 스스로 환경 보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일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환경이 보존되는가. 과거의 완전한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도 대안이 아니고, 그런 환경을 지금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대답은 이 책에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고 “좋은 글이야. 재미있는 철학이 나왔어”라고 하면서, 무통화가 진행되는 존재가 독자 자신일지 모른다고 경계한다. 나도 그런 독자가 될까 두렵다. 오늘 나는 인생이 고통의 연속이고, 자신의 인생을 혼자 살고 혼자 죽어야 한다는 절대 고독을 느끼면서, 소주 한 잔 해야 할 것 같다. 어, 이 생각도 무통화의 습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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