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는 진달래 들엔 개나리/산새도 슬피 우는 노을진 산골에/엄마 구름 애기 구름 정답게 가는데/아빠는 어디 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아 아 아, 우리는 외로운 형제/길 잃은 기러기

  60년대 말 이미자가 불러서 히트한 ‘기러기 아빠’의 가사는 이렇다.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과 더불어 이미자의 3대 히트곡으로 기록되는 이 노래는 70년대 박정희 정권에 의해 금지곡으로 묶였던 내력도 있다. 이유인 즉 가사가 너무 어둡고 애조를 띤다는 것이다. 이런 표면적인 이유와는 달리 이 노래 가사의 밑바탕에는, 월남에서 전사한 아빠를 그리워하는 가족의 슬픔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있었다.

  우리에게 ‘기러기 아빠’는 이제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신드롬으로서 일반명사로 정착되었다. 이 말이 이미자의 노래 제목에서 왔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기러기가 상징하는 고독과 우수, 애처로움의 정조는 이 말이 유행하는 우리 사회의 우울한 한 단면을 능히 짐작케 한다. 어머니와 자녀를 함께 외국에 남기고/보내고, 홀로 남아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느라 등골이 빠지는 한국의 아버지들. 한 통계 자료를 보니 현재 이런 기러기 가족이 5만 가구를 넘고, 연간 45억 8천 여 만원이 사교육비로 해외에 유출된다고 한다. 한 해 뼈 빠지게 일해 벌어들인 외화의 절반 가까이가 해외 사교육비로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기러기 아빠 가운데는 교수와 해외상사 주재원 등 고학력 전문직이 압도적으로 많다. 주위에 가족과 함께 교환 교수로 나갔다가 홀로 귀국해 독신 생활을 하며, 꼬박꼬박 돈을 보내다 방학 때면 외국으로 날아가 합가하는 교수들을 흔히 본다. 여가 생활을 즐길 여유는 아예 엄두도 못 내고, 퇴근 후 동료들과 어울려 소주 한 잔을 하기에도 빠듯한 생활이다. 무리하게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초과 강의를 하다가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왕왕 목격한다. 오랜 기간 격리된 생활의 후유증으로 단란했던 가족이 해체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진다.

  서울 모 대학 사회학과 교수가 기러기 아빠인 후배 교수와 나누었다는 말이 씁쓸한 여운으로 귓가에 남는다. “반미주의자인 자네가 어떻게 미국에 아이를 떼놓고 올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후배 교수는 반미를 하더라도 일찍부터 미국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는, 말이 안 되는 궤변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키더라는 것이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없는 상사가 기러기 아빠라고 한다. 회식을 하고 나서 구두끈 매는 시간이 길어지는 상사를 좋아 할리 없다. 아랫사람들의 눈총을 좀 받으면 어떠랴. 어찌하든 짠돌이가 되어 매달 수백 만 원의 돈을 해외에 송금하며 자신은 라면이나 빵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가장이 늘고 있는 현실이다.

  기러기 아빠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결코 건강한 사회의 척도로는 볼 수 없는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는 한국 교육제도의 모순과 차별화된 조기 유학으로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고자 하는 엘리트 계층의 비뚤어진 교육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자식 잘 키우자’ ‘자식은 부모의 분신이며, 자식이 잘된다면야 나의 희생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한국적 가족주의 문화, 그리고 ‘아버지는 돈 버는 기계’라는 한국 근대화의 과정에서 파생된 왜곡된 관념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파한다. 그런데 가족의 신성함과 가족의 유대를 무엇보다도 강조하는 가족주의가 거꾸로 그 신성함과 유대를 파괴하거나 해체하고 있는 역설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가족은 신성하나 가족주의는 불온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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