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는 신라 때 사람으로 어렸을 때 김유신 같은 훌륭한 장군이 되고 싶어 화랑에 들어갔으나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로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마침 한 스님을 만나게 되었으며 그 스님은 불교의 도리를 깨우치게 되면 그 문제를 알게 된다고 하여 화랑을 포기하고 절에 들어갔다. 원효대사라는 법명을 얻고 불교 교리를 공부하던 중 더 깊은 불법을 배우기 위해 당나라로 떠났다. 산길을 가던 중 밤이 깊고 비도 와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어떤 굴로 들어가 잠을 자게 되었다. 밤중에 목이 말라 물을 찾던 중 바가지에 물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마셨다. 물을 마시니 갈증이 해결되어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날아 밝아 깨어 보니 동굴은 무덤이었고 물은 해골 속에 들어있던 더러운 물이였다. 그 것을 보니 속이 뒤집혀 배 속의 모든 것을 토해냈다.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던 배속이 바가지 속의 썩은 물을 본 후 속이 마구 뒤틀리는 것을 보고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이 지배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그가 얻고자 하는 도를 깨닫게 되었고 당나라 가는 것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 왔다.

  그 후 원효대사는 불행하게도 파계승이 되었다. 왕궁에 법회를 갔다가 태종무열왕의 둘째 딸 요석 공주를 만나게 되었다. 요석공주는 남편이 백제와의 전쟁에 나가 싸우다 전사하여 혼자 요석궁에서 살고 있었다. 공주는 그전부터 원효대사를 잘 알고 있었고 원효대사에게 결혼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대사가 처음에는 공주의 간청을 거절했으나 마음을 바꾸어 공주와 요석 궁에서 보름동안 생활하게 되어 파계승이 되었다. 그러나 파계승이 되었으나 더 오래 요석궁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공주의 만류를 단호히 뿌리치고 요석궁을 나왔다. 파계승이 되기 전에는 황룡사에서 생활했으나 파계된 후 원효대사 대신 스스로 소성거사로 이름을 고치고 신분을 숨겨 다른 작은 절에 들어가 땔감도 해 오고 밥도 지으며 스님들의 심부름을 하는 불목하니 노릇을 하였다. 나중에 절에서 나와 속세로 들어가서 걸인생활을 하며 밥을 얻어먹거나 산열매로 배를 채우며 실제로 생활에 맞는 불교의 도리를 사람들에게 널리 가르쳤으며 특히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교리를 전파하였다. 그의 이런 활동은 무척 힘든 고행이었으나 마음은 편안하였다.

  비록 원효대사는 요석공주와의 짧은 부부 생활로 파계승이 되었으나 공주의 애절한 소망을 성취시켜 주었고 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얻었으며 설총은 총명하여 중국 한문을 우리 음으로 읽을 수 있는 이두법을 창안하여 한글 창제의 초석을 만들었으니 그 결과는 유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파계승이 된 죄 값을 톡톡히 치렀고 그러면서도 그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중생들과 직접 접촉하며 불법을 쉽게 그리고 꾸준하게 가르쳤다.

  우리는 원효대사의 철학에서 몇 가지 배워야 될 것을 생각해 보고 싶다.

  그는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명석한 두뇌를 가졌으며 훌륭한 무예를 닦았기 때문에 화랑으로서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으나 그것도 포기했고 특히 아름다운 요석 공주의 결혼 간청도 있었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그는 인간의 삶과 죽음 등의 문제를 공부하여 해결하기 위한 신념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 나쁜 생각을 품으면 말도 행동도 나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몸이 괴로움을 받게 되지만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일생동안 행복을 누릴 수 있으므로 착한 마음 또는 긍정적 사고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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