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국제화, 개방화의 시대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를 열심히 배워야 하고, 세계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제주를 모르고서 세계를 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가 제주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주와 세계를 동시에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세계를 배우기 이전에 먼저 제주부터 알아야 한다.

  제주 속담에 ‘동네 심방 나무린다’는 말이 있다. 풀이하자면 ‘동네 무당을 우습게 안다’는 말인데, 가까이에 있는 것들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우습게 안다는 말이다. 제주에 살면서 제주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평가 절하하여 싼 값에 팔아넘기거나 훼손하는 것은 후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일이다.

  제주는 그야말로 독특한 자연, 역사, 문화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 가운데는 전국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럽고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무관심과 무지 때문에 훼손되고, 망각되고, 사라지고 있다. 참으로 슬프면서도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후손들에게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도 죄를 짓는 일이다. 제주에는 생태적, 환경적, 문화적, 역사적, 미적 가치가 있는 오름들이 삼백 육십여 개나 있고, 최근에야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지만 희귀동식물의 보고이자 청정 지하수의 저장고인 곶자왈이 있다. 그리고 제주에는 세계의 나라보다 훨씬 많은 200여개의 마을이 있다. 어찌 그 뿐이랴. 제주에는 창세기와 그리스 로마신화에 못지않은 본풀이 신화와 수많은 전설이 있고, 몽고지배와 4·3사건 등의 뼈아픈 역사가 있다.

  위에 열거한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우리 삶의 물질적 정신적 토대들이다. 과연 나는 수많은 오름들 가운데 몇 곳을 올라 보았고, 수많은 마을들 가운데 몇 곳을 둘러보았는가. 곶자왈들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생겼고 왜 중요한가. 본풀이가 무슨 뜻이고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가. 몽고가 제주를 얼마 동안 어떻게 지배했고, 4·3사건 때 어떤 일이 있었는가. 이 물음들에 대해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시간을 좀 투자해서 당당하게 답할 수 있도록 준비해 보자.

   우리는 학점 따고 취업준비 하는 데 바빠서 집, 강의실, 도서관, 학원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오가기만 하지는 않았는가. 공부도 좋고 연구도 좋다.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일을 진행하다보면 좋은 결실을 맺기가 어렵다. 따라서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라도 우리를 둘러싼 제주, 그리고 제주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세계를 알려는 노력에 비해 제주를 알려는 노력이 너무 부족했다. 특별자치도와 국제자유도시 이름 앞에는 ‘제주’가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의 무관심과 무지 때문에 제주의 보물들이 턱없이 헐값에 팔리고 사라지고 있다.

  특별자치도와 국제자유도시라는 명목으로 중산간의 오름과 곶자왈들이 파헤쳐지고 역사와 문화가 잊혀지고 있다. 우리가 소중한 우리 것을 평가 절하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이번 방학 때는 세계를 배우러 떠나기 전에 제주부터 둘러보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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