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음
  이인화 옮김
  살림출판사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은 영국왕립지리학회 회원이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구한말 한국을 답사하고 쓴 여행 보고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은 생생한 취재기사의 느낌과 때론 감상적인 여행기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기자와 작가의 능력을 겸비한 인물처럼 보였다. 지리학자로서, 외국인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100여년 전 한국과 한국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사례 중심으로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으며 또한 철저한 경험주의가 바탕이 된 기록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느꼈던 혐오스럽고 실망스러운 감정이 서서히 애정으로 바뀌어가면서 한국은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인식으로 서술해 나가는 글의 흐름도 읽는 데 재미를 더해 주었다.

  이사벨라 버드 숍이 이 책을 쓰기 위해 한국에 머물렀던 시기는, 청일 양국이 동학전쟁을 꼬투리 삼아 조선 땅에 군대를 출병하려던 1894년부터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의 운명을 놓고 다시금 격돌하려던 1897년까지이다.

  저자는 그 3년 동안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11개월에 걸쳐 한국을 현지답사하면서 왕실부터 최하층 빈민들에 이르기까지 당시 한국이 가졌던 삶의 조건들을 속속들이 체험했고, 한국의 다양한 면을 탐구하고 기록했다. 때론 호기심 많은 현지 주민들에게 온갖 봉변을 겪고, 삭풍한설 몰아치는 평안도 산간에서 굶어 죽을 뻔하기도 했으며, 청일전쟁이 발발한 직후에는 거지와 다름없는 처지로 만주를 헤매기도 하지만 덕분에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는 철저한 실증성과 현장감이 살아 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한국의 문제를 기본적으로 제도상의 문제로 보고 있다. 민중 속으로 깊게 들어가서 본 그녀는 점차 한국인이 가진 저력을 깨닫게 되지만 한국의 잠재력이 관공서의 부패와 부정으로 인해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한다.

  그녀는 한국의 정치 체제에 대해 완전히 실망한 나머지 러시아 지배 하의 한국인의 행복한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이 같은 한계에 대한 절박한 심정이 이해는 가지만 이것은 한국의 미래가 다른 열강의 보호에 의해 더욱 증진될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을 조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 전하는 100여년 전 한국과 한국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또 사례 중심으로 애정을 가지고 생생하게 전하는 철저한 실증성과 현장감에 넋 놓고 감탄할 일만은 아니었다. 이것은 필자의 학문적 탐구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유럽과 서구 사회에 한국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쓴 목적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장이자 결론부인 37장 ‘한국에 부치는 마지막 말’은 위기의 한국과 한국인을 향해 고언하는 형식을 띄고 있지만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제국주의국가였던 영국을 대표하여 특수한 목적을 띄고 조선을 탐사하고 기록 분석한 정보원의 보고서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국인으로서는 막막한 공포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100여년전 영국에서 이미 이러한 책이 편찬될 수 있었다는 점을 볼 때, 지리에 대한 이 같은 관심과 호응은 한편으론 몹시 부러운 것이기도 하였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라는 인물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처음 1장부터 4장까지는 한국에 대한 실망과 혐오감으로 글을 써나가지만 5장에서 12장까지는 내륙여행에서 오는 감동과 깨달음으로 한국에 애정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한국은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처럼 ‘문화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평등한 것이다’라는 인식은 지금에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당시 제국주의 시대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국민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이토록 자세하고 정밀한 조사를 가능케 했던 것은 아마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에 대한 강한 애정과 따듯한 이해의 자세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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