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문예출판사

 

벌써 한해가 저물고 있다. 어린 시절 구독하던 어린이 잡지의 연말호나 신년호에는 어김없이 날아다니는 자동차와 초고층 건물, 우주정거장을 오가는 우주왕복선, 그리고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 등이 내가 어른이 되었을 즈음의 미래상으로 그려져 있었다.

  새천년에 들어선 오늘날 그 공상의 일부는 현실로 나타나기도 하였고 또 일부는 아직 다가올 미래의 일이기도 하다. 미래가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지, 과연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유토피아를 선사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요즘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생명복제연구의 성과에 관한 보도를 들을 때마다 나는 종종 헉슬리의 이 소설을 떠올린다. 국내에는 ‘멋진 신세계’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원래 헉슬리는 의사가 되고자 생물학을 전공한 생물학도였는데 그의 집안은 대대로 생물학 연구로 유명한 인물들이 많다. 진화론 보급에 기여한 동물학자 토머스 헉슬리가 할아버지, 유네스코 초대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한 생물학자 줄리언 헉슬리가 형, 그리고 동생은 196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앤드류 헉슬리이다. 이처럼 ‘한 생물학’하는 집안 출신의 저자가 자신의 생물학적 지식을 토대로 그려낸 유토피아가 바로 소설 ‘멋진 신세계’이기 때문에 70년이 넘는 먼 옛날(1932년)에 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우리가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SF소설이 쓰여 질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서기 2545년으로, 지구는 통일된 세계국가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탄생을 기원으로 하는 서력대신 포드 632년이라는 포드기원을 쓰는데 이는 미국의 자동차왕인 헨리 포드가 T형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벨트라인 조립대를 도입한 1913년을 원년으로 한다. 수천 년 동안 민족적, 인종적 갈등을 겪어온 인류가 하나의 세계국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생명복제를 완성한 과학기술의 승리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복제되는 것이다.

  세계국가의 모든 인간은 인간을 부화시키는 공장에서 생산되는데, 이 인간부화공장이야말로 세계 인구를 조절하고 인간의 동일성을 유지시키는 세계국가의 핵심시설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네 개의 계급으로 나뉘어 각 계급에 걸 맞는 외모와 지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또한 자신의 계급에 맞추어 교육되고 맡겨진 역할을 완수하며 일종의 환각제인 소마라는 약물을 복용하는 ‘행복’을 누린다. 불행이나 부족함이란 없다. 가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부모나 자식 같은 단어는 이미 낯설거나 금기시된 단어다.

  이러한 사회를 저자는 정말 제목처럼 멋진 미래사회로 생각한 것일까? 아마도 그는 역설적으로, 오늘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많은 문제들이 고도의 과학기술의 발달로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부터, 모든 불행이 제거된 찬란한, 그래서 인간이 누리는 행복이라는 것이 더 이상 인간적이지 못한 미래사회를 그림으로써 과학기술에 거는 우리의 막연한 핑크빛 기대를 경계하는 것이리라.

  책이 가까워지는 계절, 생명복제연구의 윤리문제로 매스컴이 시끄러웠던 요즘, 학생여러분들이 한번쯤 읽고 생각해봤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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