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에 있어서 우리의 문제점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십 년 동안 영어를 공부해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그 동안 여러 각도로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토플 성적 하나만을 보더라도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 및 도시들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원인을 분석해 보면 영어학습에 기울인 우리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경우 이들 나라보다 영어사용에 관한 친화적 환경을 확보해 주지 못하고 있는데 기인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영어에 관한 우리의 문제는 영어학습 쪽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영어사용의 환경문제가 더 결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학교에서 아무리 많은 시간을 영어학습에 할애한다 하더라도 친화적이지 못한 영어환경 속에서는 ‘영어에 관한 지식' 만을 습득하고 마는 셈이 된다. 친화적 영어환경 속에서는 문자 그대로 ‘영어를' 학습해서 사용하는데 주안점을 둘 수 있는 반면에, 친화적이지 못한 영어환경 속에서는 ‘영어에 관한' 지식만을 쌓을 뿐이고 결코 사용해볼 수 없는 죽은 영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영어에 친화적인 환경을 확보할 수 있느냐의 여부야말로 향후 우리 영어의 사활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국제자유도시 추진과 관련한 제주의 영어문제는 바로 영어사용의 환경을 어떤 형식으로든 친화적으로 만드는데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제주에서 어떻게 하면 영어가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이를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서 제안할 수 있는 것이 영어마을의 조성이다.
국내에서 영어마을의 조성은 지난해 9월 3일 경기개발연구원이 주최한 영어마을 조성에 대한 심포지엄에서 맨 처음으로 구상되었고, 이를 토대로 경기도에서는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태이다. 한편 제주에서도 주식회사 한국자격검정개발원이 내년 7월까지 4백억 원을 투입해서 영어마을의 조성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같은 본격적인 영어마을 조성계획이 있기 전에도 사실은 KBS 미디어 영어캠프나 아주대학교 잉글리시 카페, 아주대학교 어학교육원 영어캠프 등과 같은 유사 영어마을의 운영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는 항구적인 프로그램도 아닐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일종의 영어연수 차원의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영어마을이란 문자 그대로 마을이어야 한다. 즉 마을 안에서 영어만이 사용되어야 하며 동시에 영어연수를 하는 학습의 장만이 아니고 사람들의 실제 삶의 현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영어마을이라는 것이 이름뿐이고 기존의 영어학원보다 약간 더 고급화된 영어학원 정도로 전락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영어마을의 조성과 관련한 새로운 전략을 시도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는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경기도나 제주도에서 구상·추진하고 있는 영어마을도 역시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마을이기보다는 언중들의 삶과 유리되기가 쉽다는 약점을 갖는다. 오히려 지금 실제로 사람들이 일하는 일터 속에서 자연스럽게 영어사용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실질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면 우리대학을 영어마을로 지정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첫째, 우리대학은 제주에서 가장 많은 지식인들이 운집해 있는 곳이다. 교육을 받는 학생 수만 하더라도 1만 명이 넘고 교수 수만 하더라도 시간강사를 포함하면 거의 1천여 명에 이른다. 지식인의 숫자뿐만 아니라 영어사용의 환경이라는 차원에서도 제주에서 가장 기반이 튼튼하다 할 수 있다. 이는 2002년 현재 4백4십3명에 이르는 전임교원 중에서 약 20퍼센트가 외국에서 학위를 했으며, 1998년부터 2003년에 이르기까지 약 24퍼센트에 이르는 교수가 장기 해외연수를 다녀옴으로써 외국과의 접촉이라는 차원에서 다른 어느 기관보다 세계화가 잘 되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대학은 현재 8개국 21개 대학과 학술교류협정을 맺고 있고 실제로 2003년 봄 현재 39명의 외국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데 그 수는 앞으로 더 큰 증가추세를 보일 것이다. 또한 13명의 외국인 강사가 초빙되어 강의를 맡고 있으며 79개의 정규 영어강좌에서 약 4천 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고 26개의 영어 특별강좌에서 8백 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영어와 관련한 이 숫자들은 이 기관이 기존의 인적자원과 시설 및 운영시스템으로써 친화적 영어환경의 기본 틀이 다른 어느 기관보다 비교적 유리하게 갖춰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최근 들어서는 강의가 점차로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금년 봄 학기의 경우 12개의 강좌에서 원어로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넷째는 영자신문 `The Islander'를 들 수 있다. 이 신문은 이 지역에서 발행되는 유일한 영자신문으로서 1970년에 창간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데 현재는 연 4회 발행되는 잡지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바에 의하면 여러 측면에서 우리대학은 영어마을이 될 수 있는 기본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이런 여건만으로는 영어마을의 실현이 불가능하고 각각의 이 여건들이 더욱 더 세계화될 수 있도록 강화되어야 한다.
외국인 교수만 하더라도 현재 몇 개 외국어 강의만을 담당하는 객원교수로는 역부족이다. 각 해당 전공분야에서 전공담당의 외국인 전임교수도 제도적으로 일정비율을 확보해야 영어환경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유학생 수도 적어도 전체 학생수의 10퍼센트 이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 의료, 복지 등의 지원체계도 잘 갖추어져야 한다. 이는 외국학생들이 유입되지 않고서는 영어사용의 환경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원어 강좌의 경우도 전체 개설되는 강좌 수에 비하면 현재는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영어마을에서 영어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가지의 인센티브를 개발해서라도 점차로 모든 과목이 영어로 강의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다음으로는 영자신문 문제인데 영어의 사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연 4회의 잡지 형식보다는 보다 더 빈번한 발행을 할 수 있는 신문형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적어도 주 1회는 발행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궁극적으로는 매일 발행이 되는 시스템으로까지 발전되어야만 국제자유도시의 대학신문으로서의 위상에 부합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대학 자체가 영어마을이 되기 위한 기반 조건을 살펴보았고 이들의 보완점까지도 언급하였다. 그런데 이들 각각의 문제가 개별적인 사안으로 취급되지 않고 전체적인 영어마을계획 속에 통합되어 운영되어야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통괄할 수 있는 기구의 마련도 필요하고 대학에서의 각종 공문과 회의도 영어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시스템이 동시에 갖춰져야 할 것이다.


※이 내용은 제주언어학회에서 출판한 언어학 연구 자료집에 수록되어 있음. 필자의 양해를 구하여 이기석 (영어영문학과)교수의 「제주에서의 영어사용 확대 방안」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임.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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