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국을 중심으로 한 사스의 창궐로 인해 전 세계가 확산방지와 퇴치에 전념을 다하고 있다. 이는 새 천년 21세기를 맞는 장미빛 전망을 조롱하듯이 9.11테러,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에 이어 사스라고 명명되는 신종전염병의 창궐을 보면서 과연 우리 인간이 21세기에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된 생명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지 의심스럽다.
인류의 역사는 같은 동족인 인간끼리의 전쟁의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질병과의 전쟁 즉 바이러스나 세균과의 전쟁이 그것이다. 전쟁보다도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로 인한 사망이 전쟁이나 재해로 인한 사망보다 훨씬 많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바이러스는 인류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인류가 멸종한다 할 지라도 최후까지 지구와 운명을 같이 할 것이다.
인간이 미생물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불과 200여년 전 전 로버트 코흐가 세균을 처음 발견하고 나서부터이다. 이후 플래밍이 ‘마법의 탄환'이라 불리는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견하고, 제너에 의해 창안된 종두법에 의해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게 되었고, 파스퇴르가 광견병 백신을 개발함으로써 예방접종을 통해 대부분의 전염성 질환을 퇴치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실제로 1980년도에 세계보건기구가 천연두 박멸을 선언함으로써 인간이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첫 번째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감이 인간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항생제에 대응하여 세균은 지속적으로 내성균주를 만들어 대항하였으며, 무분별한 항생제 남용은 이를 부추겼다. 또한 무분별한 개발은 에볼라 바이러스, 20세기 흑사병 AIDS 바이러스, 광우병 등 새로운 질환의 출현으로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전선은 다시 절대 열세에 몰리는 실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인류가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배운 교훈은 인간이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교훈이다. 미생물은 생존에 관한 한 인간보다 훨씬 진화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미생물과 공존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며(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미생물이 우리 몸에 침범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고, 침입하였을 때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능력(면역)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지구상에서 가장 악성바이러스는 바로 인간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진화된 바이러스는 절대 숙주를 파괴하지 않는다. 숙주의 죽음은 바이러스 자체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숙주인 지구환경을 지속적으로 파괴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파괴하여 숙주인 지구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인간은 특별한 이유 없이 동족끼리 학살을 자행하는 지구상의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바이러스와 인간', '인간과 지구' 공존만이 살 길이다.
모든 인류가 평화를 갈망한다지만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건데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가 과연 존재했었는가에 대한 의문에는 답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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