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명철(지리교육전공 교수)

지난 연말 어느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심야에 방영한 ‘라스트 사무라이’(The Last Samurai)를 보았다. 제목만 보고는 단순히 일본 무사계급의 몰락을 그린 영화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그 보다 훨씬 크고 깊은 것이었다.

지금부터 140여년전 일본은 젊은 메이지 천황이 등극하면서 대격변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 산업화를 통해 국부를 증진시키던 서구 열강들을 본받아 일본도 근대화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서양의 앞선 기술과 장비를 들여와 철도를 부설하고 총과 대포로 무장한 신식 군대를 갖추었다. 이와같은 서구화, 근대화의 과정에서 개혁·개방을 주장하는 세력과 일본의 고유한 옛 가치를 지키려는 세력간에 갈등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물밀듯 밀려오는 거대한 근대화의 물결에 온몸으로 저항하다 장렬하게 산화한 어느 사무라이의 최후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감독은 전통적인 제도와 정신은 지키면서 서양의 기술과 방법을 받아들이려는 이른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메이지 천황의 고뇌하는 모습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동시에 개방화의 물결은 결국은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라는 메시지도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07년 새해가 밝았다. 돼지 해, 그것도 600년만에 돌아온 황금돼지 해라고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희망을 품고 새해를 맞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올 한해도 여느 해 못지 않은 격동의 한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새해 벽두부터 대선 예비주자들의 동정과 지지도 조사 결과가 신문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우리 국민들은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올 해 가장 큰 사회 불안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미FTA 협상도 집단간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하는 사회 양극화 현상이야 말로 언제라도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잠재적인 뇌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갈등과 분열로 국민적 에너지를 소비할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세계의 변방 국가에서 중심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모처럼 맞이한 국운 상승의 호기를 이대로 흘려버린다면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우선 우리는 지금 문명사적 대 전환기에 처해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구촌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개혁과 개방, 그리고 교류와 협력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되어 버렸다. 따라서 도도한 세계사적 흐름을 거스르기 보다는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를 모색하는데 사회적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해(利害)를 달리하는 개인이나 집단간에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서로를 배려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와 미덕을 실천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 역지사지의 미덕이 널리 발현된다면 승자독식(zero- sum game)이 아니라 서로 상생(win-win game)하는 새로운 기풍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원단(元旦)에 다시 한번 갈등과 분열을 넘어 상생과 화합하는 올 한 해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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