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관에 자주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도서관에 가는 것은 내가 맡고 있는 ‘출판문화론’ 수업과 연관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세울 만큼의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심심하고 잠깐 짬이 나면 가는 경우가 많다.


 진성기 편저
「제주도민요집」

내 스스로는 이것을 도서관 나들이라 여기고 있다. 뭇사람의 일반 나들이에도 목적이 있는 것처럼 나의 도서관 이용에도 나름의 목적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제주대 도서관에서 가장 좋은 책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책의 무게를 가늠해야 하는 이 발상은, 그 처음부터가 무모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우연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당연히 내 눈에 띄는 책 가운데 나의 의미부여가 깊게 개입된 책이 좋은 책으로 선정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그간의 도서관 나들이에서 내가 찾아 낸 가장 좋은 책은, 1958년 당시 제주대 2학년 학생이었던 진성기 군이 편저한 「제주도민요 제1집」이다. 3집까지 이어 나온 이 책은 제주시에 있었던 인쇄사에서 프린트판으로 출간된 것으로, 치장을 중시하는 요즘 책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하다.

이 책에는 그가 학생 시절 제주도 곳곳을 누비며 캐어 모은 제주도 민요 1500여 편 가운데 300여 편이 실려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저자가 당시 제주대 학생이었다는 점이다. 민요의 깊은 뜻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가 제주대 학생이 아니었다면 무심코 스쳐 지날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주대학에 근무하는 교수로서도 책 한권을 학교 도서관에 남기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학생이 남겼다니 그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제주대학 도서관에 있는 그 많은 책 가운데 이 책은 가장 제주대학다운 책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인연으로 그의 책을 더 찾아보게 되었다. 그는 재학시절 이 민요집 말고도 「제주도 속담 1·2집」(1959)과 「제주도 설화집」(1959)을 더 남겨놓았다. 나중에 더 알아보니 제주대 2학년 학생의 그 작업은 50년 이상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책들이 모이고 다듬어져 이제는 제주도학(濟州島學) 총서(叢書) 30여권이 되었다. 그 학생은 지금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박물관인 제주민속박물관장을 맡고 있다.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이 박물관에는 그가 평생을 캐어 모은 제주도의 민요, 설화, 속담, 신화, 무속 그리고 온갖 민속 유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진성기 군의 책을 찾아 읽다 보면, 당시 외딴 섬 한 대학생의 책에 서문을 써주었던 외솔 최현배 선생, 민속학자 임동권 선생, 이기형 선생을 만날 수 있다. 도서관 나들이에서 이러한 대학자들의 학문적 관용과 혜안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이 된다.

 

 

 

최낙진 교수
(언론홍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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