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운동이 격렬하던 막바지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대학생들이 사회·시대 참여와 취업 등 진로에 대한 고민들이 상충될 때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지?
입학했을 때 무수히 많은 빨간 글씨들을 보고 너무 자극적이고 편파적인 내용이 많다고 느꼈다. 비록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젊은 날의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벽보에 있는 많은 글들이 시대를 반영했으며, 나름대로 진리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 대학 생활은 어떻게?
나는 디자인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백지상태에서 이기후 교수님의 첫 강의를 받았다. 한마디로 ‘뿅갔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굉장히 파격적이고 파워 풀한 수업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위치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복학해서는 작업실을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생활했었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전성수 교수님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대학 생활동안 늘 좋은 교수님을 만나서 많은 칭찬을 받았는데, 이런 칭찬을 통해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대학생활을 돌이켜 보면 오로지 전공 공부에만 충실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전공 공부가 지금 내 모습의 밑바탕이 됐다. 또 친구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을 했었는데 딱딱한 공간에서 벗어나 학생답게 순수하게 꾸려나갔던 걸로 기억한다. 내 대학생활은 순수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서 좋다.

▼ 대학생활의 고비?
어떤 사고나 규칙을 뒤집어서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주어진 사물에 대해 어떤 존재인가를 한번쯤 뒤집어 그 존재를 재구성해보는 습관들이 지금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거 같다. 그 때의 고비는 가장 힘들기도 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일깨워준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난 아직도 ‘새옹지마', ‘전화위복'을 믿는다.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큰 기쁨이다. 어떤 악조건도 나중에 복이 된다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다. 노력한 상태에서 얻어진 기회는 잊어버리지 않고 나중에 어떻게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큰 가치를 지닌 것이다. 고로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 산업디자인 학과는 유난히 전국 또는 국제 공모전 입상이 많은데, 그 기반은 무엇이라고 생각?
우선 교수진이 그것이다. 학생들이 밤을 샌다면 교수님도 함께 밤을 새주셨으며, 공모전을 준비하면 같이 새벽에까지 남아서 도와주셨다. 맨투맨 방식으로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발전하도록 도와주신 교수님이 공이 크다.
사실 현재 제주도에는 디자인이라는 작업을 소화할 곳이 거의 없는데, 다른 산업체에 우리학교의 실력을 알릴 수 있는 것은 공모전뿐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끊임없이 공모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과를 알리고 나아가 학교를 알리기 위해서 학생들의 노력이 컸으리라고 본다.

▼ ‘2003년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에 선정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회사에서 그처럼 탄탄한 인정을 받으시려면 남다른 노력이 있었을 텐데?
난 어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절대 잔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더 좋은 기회를 찾으려고 애쓴다든지 눈치를 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파견을 많이 다녔는데 그 때마다 ‘너 이제 겉돌게 된다'는 식의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사실 내가 파견 갔던 곳은 실제 디자인한 것을 양성할 수 있는 팀이 아니라, 컨셉을 짜거나 홍보를 하는 팀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좌천되는 것으로 느꼈지만 난 항상 새로운 환경에 금방 적응하며 즐거웠다. 다양한 삶의 경험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물 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많은 사람을 접하면서 얻은 다양한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컨셉을 제시했던 것이다. 특히 기존에 있던 것에 기능을 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출하면서 많은 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 제주도 등 자치단체에서도 첨단디자인 연구센터 등 디자인 산업을 육성하려는 시도가 있다. 제주가 디자인 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을지?
많은 기업인들이 꿈을 꾼다. 도시보다는 제주도 같은 자연이 있는 곳에서 일을 한다면 정말 좋을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국제화 바람이 제대로만 불어준다면, 어쩌면 국제도시로서 가장 큰 지점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제주도가 정보 네트워크가 고립된 섬이지만 가장 활발한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변모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하는데 이렇게 되는 것이 나의 소망이기도 하다.

▼ 디자인 업계에서 일을 하시면서 나름의 철학이 있다면?
지금 이 세상은 기술의 개선과 인간사회 발전을 위한 것을 유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디자인하면서 가장 슬플 땐 ‘내가 부르주아를 위해서 만들 것인가?’ 라는 문제에 직면할 때이다. 진화가 아닌 다른 차별화란 이름의 포장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야 할 때 참 서글프다. 그래도 나름의 소심이라면 과대포장을 하는 상업적인 면에서 할 것이 아니라 사회에 꼭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소비자를 넘어 인간사회와 지구를 위한 더불어 잘사는 디자인을 만드는 게 꿈이다.

▼ 제주에서 인재가 클 수 있는 방향?
세계 속 화려한 여러 도시를 가봤지만 제주 만한 곳이 없다. 제주의 자연환경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좋은 환경은 노력을 통해서 가꿔 나가야 한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자연, 직관적이고 솔직한 정서, 이런 환경이라면 당연히 개성 있는 감성이 베어들게 마련이다. 이것이 가장 큰 제주인의 경쟁력이다. 많은 이들이 내가 제주도에서 자란 것을 부러워한다. 많은 예술인이 스페인이나 이태리처럼 아름다운 자연에서 나온다고 한다. 자연은 근원이기 때문에 표절이 될 수 없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어서 상상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다.

▼ 제주대 재학생뿐만 아니라 제주 청년들의 상실감이 크게 느껴지는 현실이다. 물론 취업과 관련한 청년 실업이 크게 작용한 탓인데, 이런 후배들에게 희망의 싹을 틔우는 조언을 해준다면?
제주는 작은 울타리이다. 그 울타리를 속에서 야망에 불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보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집단이지만 남들이 갖고 있지 못한 그룹의 힘이 있다면 언젠가는 그 빛을 밝힐 수 있다. 조금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서로 부축하며 더 좋은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야망이 반드시 성공의 승패는 아니다. 젊을 때 많은 것을 보고 겪어라. 그리고 항상 즐겁고 밝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긍정적인 사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