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무어냐 특기는 있느냐’는 질문은 참으로 사람을 곤혹스럽게 한다. 어떤 때는 고상하게 음악감상이라고 취미를 묻는 칸에 채워 넣고는 그때부터 음악감상을 취미삼아 보려고 애써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시큰둥하게 산책이라고 적어놓고 그때부터 산책을 시도해보지만, 어느 것 하나 제 몸에 딱 들어맞는 ‘취미’가 되어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취미생활을 포기하고 살아왔었다. 취미가 무어냐고 묻는 질문에 혹시 독서라고 답해보신 적은 없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필자 또한 가장 많이 적어놓았던 답이 독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필자의 책장에는 아직도 읽지 않고 꽂아둔 책이 수두『개념어 사전』         룩하다. 서점을 뒤적이고 이 책 저책 뒤적이다가 아하 이런 책남경태 지음             이 다 있었구나 하며  사들고 나오는 것은 잘하는데, 바쁜 책들에 밀려 늘 책상머리를 지키곤 하는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내 취미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다. 이 서점 저 서점 기웃거리며, 이 책 저 책 들춰보며 마음에 드는 책 한권 골라 사는 것. 이것이 바로 내 취미였다.

학교에 올라오거나 내려가는 길에 제주시청 앞 버스정류소에 발을 내려놓으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예전엔 탐라도서엘 자주 갔었는데, 그날은 한성서적엘 들렀다. 두 개의 건널목 중에서 그날따라 북쪽 건널목이 더 가까웠고, 마침 신호가 켜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남쪽 건널목을 건너면 바로 탐라도서인데, 북쪽 건널목을 건넜으니 탐라도서까지 가려면 빵집과 분식집을 지나가야했다. 코를 유혹하고 위를 자극하는 튀김냄새를 피하기 위해서 발을 돌려 한성서적으로 들어갔던 것이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눈을 유혹하고 마음을 자극하는 한 권의 책에 붙들리고 말았다. 책이 출판된 지 일 년이 넘도록 제주도 여느 서점에서 찾아보지 못했던 보석 같은 책 한 권을 발견한 것이었다.

『개념어 사전』. 남경태가 쓰고 들녘에서 찍어낸 개념어사전을 뽑아들고 책을 펼치는 순간, 아하 이런 책이 다 있었구나 하며 탄성을 질렀다. 얼굴이 밝아지고 혼자 실실 웃으면서 연신 책장을 넘겼다. 처음엔 서 있었는데 어느새 쭈그리고 앉아 책에 빠져 있었더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결국 저린 발을 참지 못하고 코에 침을 바르며 책을 사들고 나왔다. 한 시간 남짓 이미 얼굴을 튼 탓인지 『개념어 사전』은 책상머리를 지키고 버티는 신세를 면하고 손때가 묻어가고 있는 중이다.

『개념어 사전』은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보통 사전과 달리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지은이가 밝힌 대로 ‘내 멋대로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쓴 개념어사전’은 그러나, 객관적인 자료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적이기도 하다. ‘가상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1592년의 임진왜란을 들먹이는가 하면, ‘생산’을 설명하며 르네상스와 푸코, 알튀세르를 끌어오기도 한다.

『개념어 사전』은 지식이라는 객관적인 정보를 습득하게 해주는 책이라기보다는, 객관적인 정보들을 주관적으로 소화하고 또 주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훈련지침서와 같은 책이다. 읽어가다 보면, 아하 나도 이런 식으로는 쓸 수 있겠다 하며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읽고 나면, 이제 나도 개념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그런 책이다. 김준표 사회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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