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고향인 제주섬에도 대한 후 5일부터 입춘 전 3일(1월25일~2월1일)에는 1만8천 신들이 부재한다. 지상의 모든 신들이 임무교대를 위해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제주인들은 이 때에 신이 두려워서 못하던 일, 즉 집을 수리하고 변소를 고치고 이사를 한다. 이러한 신구간(新舊間) 풍속은 오늘날까지도 살아있는 제주섬의 독특한 전통문화 가운데 하나이다.

▶『제주도 신구간풍속 연구』 윤용택 지음

한때 행정당국에서는 신구간 풍속이 임대료 폭등과 쓰레기 대란 등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제주섬의 대표적인 악습으로 규정하여 폐지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동안 미신으로만 치부되던 신구간 풍속을 자세히 들여다본 결과 그 안에는 합리적 측면이 있으며, 문화산업시대에는 신구간 풍속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제주섬의 독특한 문화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제1장에서는 신구간 유래를 17세기 중엽에 발간된『천기대요』와『산림경제』에 등장하는 “대한 후 5일부터 입춘 전 2일은 곧 신구세관(新舊歲官)이 교차하는 때이다. 이때에는 산운에도 거리낌이 없어 길흉살에 이르기까지 극복되므로, 임의대로 가택을 짓고 장사를 지내도 불리함이 없다.”는 ‘세관교승’을 토대로 실마리를 풀어 보았다. 그리고 제2장에서는 지난 50여년 동안 제주도내 신문에 보도되었던 기사와 칼럼 등을 통해 제주사회의 신구간의 풍속도를 살펴보았다.

제3장에서는 신구간 풍속이 제주섬에만 있는 이유를 독특한 기후환경에서 찾아보았다. 아열대 기후에서 온대기후로 전이되는 지역에 위치한 제주 기후는 육지부와 상당히 다르다. 지난 80여년간 제주섬의 기후표를 분석한 결과 미생물 번식이 둔화되는 시기인 일평균기온이 5℃ 미만인 기간이 우연하게도 신구간과 거의 일치했다. 평소에는 동티날 일도 신구간이면 괜찮다는 이야기가 제주에서는 단순히 신화적 믿음을 넘어서 경험적으로도 뒷받침돼 거기에 근거한 신구간 풍속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다.

제4장에서는 신구간 풍속과 유사하다고 여겨지는 여러 풍속들, 즉 섣달 그믐날 밤을 지새우는 제석수세 풍속, 우리 몸에 사는 삼시충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섣달 경신일에 밤을 지새우는 경신수야 풍속, 부엌신인 조왕이 지상에 있던 일을 옥황상제에게 보고하러 하늘로 올라가는 섣달 23일에 제사를 올리는 조왕제 풍속 등이 신구간 풍속과 어떻게 다른지를 규명했다.

제5장에서는 신구간 풍속의 축제화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신화적 세계에 살던 옛 제주사람들이 ‘신구간’에 신화적 세계의 금기를 깨었듯이, 오늘날 우리는 신구간의 축제화를 통해 여러 가지 사회적 금기를 깰 수 있다. 신구간 축제 기간에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신구간에 축제를 벌이면서 정신적, 물질적 차원에서 묵은 것을 털어내고 홀가분하게 새봄을 맞는 것은 신구간 풍속의 본래적 의미와도 부합한다. 다양한 축제 프로그램을 개발해낸다면, 제주 관광과 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신구간 풍속은 전통적 농경사회의 산물이지만 산업사회로 들어선 이후에도 더욱 확연하게 이어졌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제주사람들이 신구간 풍속을 지키고 있다. 따라서 신구간의 본래적 의미를 파악해 부정적 측면은 지양하고 긍정적인 측면은 계승시킬 필요가 있다. 낯선 문화체험을 강조하는 문화산업사회에서는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된다. 제주섬에만 있는 신구간 풍속은 없애야 할 부끄러운 문화유산이 아니라 새롭게 재해석돼야 할 문화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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