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자서전 읽기를 좋아한다. 자서전을 읽음으로써 한 인물의 사상과 생애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서전을 읽고 나면 가끔 세상이 달리 보일 때가 있다. 자서전의 저자에 자신을 투영하고 싶은 어설픈 욕망이 발동해서이다. 이런 나의 욕망을 이제는 꺾어버리는 자서전이 있는데, 알버트 슈바이처의 ‘나의 생애와 사상’이다. 이 책에서 슈바이처는 우리 모두는 아류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그는 ‘성자’이고, 나는 ‘아류’이기에, 나의 욕망이 좌절로 바뀌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이제는 담담하게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의 ‘아류 인생’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슈바이처를 따르고자 하는 모순을 여전히 안고.

1장에서 8장까지는 그가 좋아하는 학문과 예술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젊은 시절을 살았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자서전 전반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은 학문과 예술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외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파이프오르간에 대한 정열은 파리를 오가는 레슨으로 이어졌고, 철학과 신학에 대한 관심은 스트라스부르크대학 철학부과 신학부에서 빈델반트의 세미나, 카를 부데의 강의(그는 그의 강의를 ‘하나의 예술적 즐거움’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칸트의 종교철학에 대한 철학박사논문, 성만찬 문제에 대한 신학박사논문으로 이어졌다. 한권의 책 소개를 위해 다시 읽으면서 흥미롭게 다가왔던 점은 슈바이처가 바흐의 음악 외에도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했다는 점이다. 예수는 세계 부정의 종말론적 세계관 속에 활동적 사랑의 윤리를 제시하고 있다는 종교관이 있었기에, 슈바이처는 바그너의 음악을 높이 평가할 수 있었다. 이는 기독교 가치에 의한 당위(나는 …를 해야 한다.)의 세계를 부정하고 의지(나는 …를 하고자 한다.)의 세계를 지향했던 니체가 바그너를 기독교적이라는 이유로 부정했던 것과 대비된다.

9장부터 20장까지는 원시림의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아프리카에서 의료활동을 하는 ‘오강가’(토인들이 붙여준 그의 이름으로, ‘주술가’라는 뜻임) 슈바이처가 그려진다. 그가 강조한 사랑의 윤리는 행동의 윤리였다. 학문의 삶을 추구하는 ‘나르치스’와 예술의 삶을 추구하는 ‘골드문트’의 길을 모두 포기하고, 그가 간 길은 ‘사랑의 실천’이라는 길이었다. 백인이 유색인종에게 행한 일에 대해 반성하며, 백인인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하는 일은 자선이 아니라 속죄라고 그의 다른 책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에서 기술하고 있다. 이를 위해 물질적 독립마저 포기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포기하면 더 얻게 된다. 예술을 포기했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자유시간을 파이프오르간 연주 솜씨를 보완하고 심화하는 데 쓸 수 있었다. 학문을 포기했지만, 오고에 강가의 하마떼를 우연히 보고 “생의 외경”(“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둘러싸여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 사상으로 발전시키고, 원시림에서의 사색을 통해 문화철학을 전개할 수 있었다. 보통의 삶을 포기했지만, 세상 사람은 그를 ‘원시림의 성자’로 추앙한다. (221면에 있는 그의 행복한 고백을 살펴보라!)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크로노스chronus로서의 시간)을 살아가지만, 그 삶의 깊이(카이로스kairos로서의 시간)는 천차만별이다. 우리 삶을 어떻게 의미있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생애와 사상’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슈바이처의 말로 한권의 책 소개를 마무리한다. “활동하는 시간이 찾고 기다리는 시간보다 더 긴 사람들은 행복하다. 자신을 완전히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이러한 행운아들은 겸손해야만 한다. 시련이 오더라도 흥분하지 말고 “당연히 올 것이 왔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봉진 법학과 교수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