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권할 만한 책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퍼뜩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조나단 하(Jonathan Harr)라고 하는 기자 출신 작가가 쓴 “A civil action”이라는 책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민사소송”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된 바 있다. 예일, 하버드, 코넬, 듀크, 스탠포드 등 미국의 여러 로스쿨 신입생들이 입학 전에 미리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선정되기도 했던 책이다. 법에 대해 어렵게 설명한 책도 아니고, 내용을 이해하는데 법적 지식이 필요한 책도 아니며, 더구나 법학자가 쓴 책도 아니다. 한 햇병아리 변호사가 거대 권력에 맞서 수년에 걸쳐 소송을 수행해 나가면서 겪는 야망과 좌절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며,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다.

미국 보스턴 근교의 작은 공장 도시 워번에서 수 년간 어린이 8명이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주변 공장의 폐수로 인해 발병한 것으로 확신한 29살의 젊은 변호사 잰 슐릭만은 개인의 부와 명예를 동시에 이루겠다는 야망으로 이 사건을 맡는다. 8년간의 추적과 법정 싸움을 벌이며 나름대로는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노력하지만, 엄청난 자본과 권력을 동원한 거대기업의 베테랑 변호사 앞에서 때로는 무력해지기도 하고 법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감동적인 승리를 이끌어 내며 독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그런 내용은 아니다. 정의는 무엇이며, 진실은 무엇인가? 법은 무엇인가? 변호사의 역할은? 변호사의 윤리는? 앞으로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학생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우리나라에 미국과 같은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변호사에 대한 인식이나 변호사의 역할도 미국처럼 변해갈 것이다. 변호사 자격증이 성공을 보증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고, 앞으로도 더 변할 것이다. 변호사라는 업무가 체질에 맞는 사람이 로스쿨에 진학해야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고 졸업 후에도 행복하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이 한번 해 볼만 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못할 짓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변호사들이 스스로를 “hired gun”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말로 하면 “고용된 총잡이”라고 할까? 총 대신 법적 지식으로 무장하고, 고객의 원하는 바를 얻어내기 위해 대신 싸워주는 사람이다. 왜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지 생각해 보라. 화려해 보여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모님이 원해서?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성취욕을 느껴보고 싶어서? 제각각의 이유가 있을테지만, 나름대로의 확실한 이유 없이는 도전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로스쿨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천천히 서두르라”고 당부한다. 공부는 조급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미루지 말아야 하며, 일단 시작하면 낭비하는 시간이 없어야 한다. 학원에서 문제풀이 위주로 공부하지 말고 평소에 책도 많이 읽고 사회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분석을 해보면서 언어이해력과 추리논증력을 키워야 한다. 갈 길이 멀다. 여러분의 건투를 빈다.                     홍석모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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