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학습에 최선을 다했으면”

 

 -학생으로 제주대를 다니실 때 학과생활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 해주십시오

“내가 학교를 9년 동안 다녔었는데 그 중에서도 과MT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1학년이었을 때는 학과가 과학교육과, 물리교육과, 생물교육과가 3개여서 MT도 3번 가야했었다. MT 가던 날 태풍이 불어 화장실에서 숙박한 일도 있었고 4학년들이 MT마지막 날이라고 돼지 한 마리 잡아서 나눠먹던 일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가 재미있었다.

            
         이상칠 교수           
또한 사범대 체육대회인 ‘사록제’에서 선후배 교수들과 함께 우승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응원하고 경기하던 기억도 남는다. 그 후에도 학과동기 7명과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 했었던 일, 복학 후에는 졸업동기들과 야유회, 일주일간의 졸업여행 갔었던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교수님께서 제주대를 다닐 때에도 동아리가 활성화 되어 있었고, 교수님께서는 어떠한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셨습니까?

“내 주변 선·후배들이 동아리 활동은 많이 했었는데 나는 동아리에 속해 있지는 않았지만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동아리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처럼 다양한 문화생활은 없었지만 영화도 보고 연극이나 전시회, 노래공연도 보러갔었다. 또한 그때는 회식자리에서 교수와 선·후배와 토론을 많이 했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토론을 했었는데, 특히 전공에 대해서는 밤새도록 토론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당시의 학업환경에 대해 이야기해 주십시오

“하루에 공부를 꼭 12시간씩 하기로 다짐했었다. 당시 도서관이 본관 3층에 있었는데 거의 도서관에서 자고 먹고 했었다. 공부를 하면서 가장 문제였던 것은 책이었다. 집안형편이 좋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하고 대부분 책을 사서 공부했다. 전공 책들은 거의 영어원본이라서 책 하나를 5~6번씩 읽었다. 그리고 주변 친구들과 토론을 하면서 서로 모르는 부분은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공부했었다. 지금도 학생들에게 공부는 혼자하면 독단적일 수 있으므로 친구들과 모르는 부분을 토론하면서 공부하라고 말해준다.”


-대학생 하면 청춘과 낭만인데 그 시절 연애모습은 어땠고, 어떤 유행들이 있었나요?

“당시에는 캠퍼스 커플이 많이 없었다. 과 커플은 있었는데 지금처럼 개방적이기 보다는 수수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마이클잭슨 ‘빌리진’이 유명했다. 또 조용필, 디스코, 기타들도 유행이었다. 그리고 과자는 에이스를 가장 많이 먹었다.”


-교수님께 있어 제주대학교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십니까

“19살에 제주대학교를 입학하면서 25년 동안 제주대학교와 함께했다. 반평생을 동고동락한 제주대는 지금은 나에게 있어서 집과 같은 곳이다.”


-현재와 과거 제주대학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입니까

“내가 학교를 다녔을 때에는 건물이 10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여러 건물이 들어서면서 건물도 더 많아지고 학교규모가 더 커졌다. 그리고 그 당시에 비해 지금 나오는 연구비도 매우 증가했다.”


-제주대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주십시오

“대학은 각 분야에 대한 전공 지식을 쌓고 국제화 시대에 맞는 사회지도자를 양성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에 사회에 진출했을 때,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기 위해서는 전공지식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또한 대인관계·리더십·사회봉사 등의 여러 경험을 대학생활에서 얻고 사회에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문정화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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