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4·3연구소 편,
『그늘 속의 4·3』 (선인, 2009)

 

“그대 발딛고 서 있는 땅 밑에서/분노로 일렁이는 항쟁의 핏줄기를 보았는가/늘상 지나치는 바람길 속에서/목놓아 외쳐부르던 항쟁의 노래를 들었는가/해방조국 통일조국의 한길에/자랑차게 떨쳐 일어섰다가/이슬처럼 스러져간 그리운 얼굴들을/그대는 기억하는가/(…)/여기는 아라동 산1번지/그대 내딛는 발길에도/마주보는 눈길에서도 불타고 있는/아아 살아오르는 항쟁의 넋을 그대는 보았는가/피로 얼룩진 우리들의 사월이/끝내 내릴 수 없는 깃발임을/그대는 진실로 아는가”

김수열 시인의 「그대는 진실로 아는가」이다. 1991년 4월 『제주대신문』에 발표된 작품이다. 시인은 ‘제주의 지성’이라는 제주대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4•3의 진실을 알고 있는지 자문해보길 촉구한다. 과연 우리는 4•3을 얼마나 아는가. 피상적으로 혹은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지 아니한가.

『그늘 속의 4•3』은 제주4•3연구소의 연구원과 회원들이 4•3경험자 10인의 구술을 채록•정리한 것으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기억을 생생히 담아내었다. 이들의 육성을 듣노라면 누구든지 연신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1948년 12월에 경찰이 우리 가족들을 조천지서로 연행해갔어요. 며칠 후 ‘이덕구 가족은 앞에 나오라’고 해서 어머니를 따라 앞에 나가려는데 친척 아줌마가 내 손을 잡는 바람에 나만 그냥 자리에 있었어요. 일주일 정도 후에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우리 가족들이 총 맞아 죽은 거예요.”

무장대사령관 이덕구의 조카 이복숙 씨의 증언이다. 그때 친척 아줌마가 잡은 손이 12살 소녀를 살렸다. 온 집안이 희생당했지만 용케 목숨을 부지한 그는 일본 오사카에 정착했다.

“어머니가 비석거리에서 외할머니한테 “어머니, 우리 애기들 잘 키와줍써. 잘 키와줍써” 당부했다고 해. (…) 앞밭에 잡아다가 한 번에도 안 죽였어. 젊으니까 한 번 총 쏘면 이 밭에서 저 밭까지 막 굴러가고, 그러면 또 한 번 쏘고 막 잔인하게 어머니를 죽였던 모양이라.”

김낭규 씨는 4•3 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까지 잃었다. 10살 소녀였던 그는 “다시 그런 시국이 돌아온다고 하면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어도 어디 가서 빨리 앞서 죽는 게 낫지, 그 고통을 어떻게 당해.”라고 말한다. 살아남은 자에게 4•3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닌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구술자들의 삶은 4•3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그늘 속의 삶’이다. 사태 때 외조부모와 외삼촌을 잃고 자신은 부상당했지만 희생자로 인정되지 않은 강양자 씨, 아버지가 행방불명되고 어머니가 학살당하자 남의 집에 맡겨뒀던 어린 동생이 호적상 남이 돼버려 가슴앓이하고 있는 김명원 씨, 4•3 때 심한 고문을 당하고 수감됐다가 형무소 문이 열리면서 인민군과 국군을 오갔던 특이한 경험자로서 아직까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후유장애자로 인정받지 못한 양일화 씨, 당시 어린 두 딸을 잃고 자신도 심하게 구타당해 병원과 약에 의존해 살면서도 제도적 후유장애자가 되지 못한 오술생 씨 등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이제 “그대는 진실로 아는가”에 대한 답변을 이 책에서 구해보기를 권한다. 제주도가 왜 평화의 섬이어야 하는지, 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지에 대한 답변도 함께 찾게 될 것이다. 
                                                                      김동윤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