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이 되면 한 주간의 피로를 풀어보려 텔레비전 앞에 다가서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보는 주말 오락 프로그램은 마치 향신료를 뿌려놓은 음식과 같다. 빛깔 좋게 다양한 기술과 구성을 보여주려 노력하지만 방송 3사의 경쟁으로 선정적이고 별다른 내용 없이 지나가 버리기 일쑤다. 이처럼 향신료를 뿌려놓은 음식 앞에서 시청자들은 섣불리 손을 대려 했다가 찌푸려진 얼굴로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주말 버라이어티쇼는 버라이어티라는 말에 걸맞게 갖가지 양념들로 버무려져 있다. 스타급 연예인들의 무더기 출연, 방대한 제작세트 등 어느 것 하나 빛나는(?) 양념들이 한꺼번에 버무려진 쇼이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구토감을 느끼게 한다. 양념이 적절히 버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내놓은 의미 없는 내용들은 “역겨움"을 넘어 “오염"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강호동의 천생연분’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그 현실을 짐작해 본다.
새로운 유형의 프로포즈 방식을 유행시켰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인기가 있는 이 프로그램은 가을 개편을 맞아 독립된 프로그램으로 등장해, 토요일 저녁 시청자들의 눈을 붙들어 놓고 있다.
호감이 생기면 발그레해진 얼굴로 수줍게 다가서는 것이 과거의 사랑 표현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을 선호하는 이 시대는 더 이상 내성적이고 수줍어하는 사랑방식을 고수하진 않는다. 이 시대는 서두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달아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천생연분의 제작진은 바쁜 스케줄 때문에 이성을 만날 시간이 없는 스타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기획의 의도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연예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 그리고 사랑을 꿈꾸는 남자와 여자이길 원하는 진솔한 모습은 화면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고 조잡한 게임과 인기투표만이 이 프로그램의 구성이다.
재미는 있다. 강호동의 재치 가득한 진행과 스타들의 몸짓은 시청자들에게 한번씩 웃음을 자아낸다. 출연자들의 화려한 신고식 ‘댄스댄스’부터 ‘못말리는 레슬링’, ‘엉뚱한 상상! 따따따’, ‘떳다 떳다 비행기’, ‘우리 그냥 과자 먹게 해 주세요, 네∼!’, ‘농담반 진담반’ 등의 게임들은 그럴싸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진지한 이상형 찾기는 아예 배제되고 남자 연예인이 바닥에 누워 여자 연예인을 다리로 들어올리는 등의 선정적인 게임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연예인들의 나이나 외모를 가지고 MC가 무안을 주는 경우가 많다. 시청자 현혜순씨는 “시청자들에게 좋은 감동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연예인들의 놀이만을 보여줌으로써, 정작 남는 것은 쓴웃음뿐"이라고 말했다.
물론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려는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 같은 도발적인 행동과 내용들은 대수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주말 오락 프로그램은 그들만의 불편한 오락에 시청자들의 외면만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러 매체 중에서 특히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은 한 순간에 웃고 넘어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파생적인 역효과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시청자 단체인 매비우스(매체비평 우리 스스로)는 “다양한 볼거리라는 버라이어티쇼가 공감하지 않는 웃음만 짜내는 볼거리로 전락"했다며, “제작진은 온 가족이 시청하는 주말프로그램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청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송사들의 몸부림으로 인기 연예인만 출연시키는 사고는 이제 그만 버려야 한다. 제작진들은 ‘누가 출연하느냐'가 아닌, ‘누가 보느냐'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현재 주말 프로그램이 ‘베껴도 좋다. 시청률만 올리자'의 태도로 몇 해 전 프로그램에서 반응이 좋았던 프로그램이나 일본 프로그램을 그대로 베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공포의 쿵쿵따’는 일본 프로그램인 ‘7인의 사무라이’를 표절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강호동의 천생연분’은 ‘스타서바이벌 동거동락’과 진행방식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타 방송사에서 ‘산장미팅-장미의 전쟁’이란 프로그램을 낳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식상함을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이젠 신물이 난다.
앞으로는 복잡하고 미묘한 사람의 감정을 감동적으로 울리는 프로그램,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표절이 아닌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그런 프로그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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