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시대, 부족함이 없는 이 시대에 책도 예외가 아니다. 예전에는 감히 출판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 거리, 사소한 경험들에 관한 책들, 성공적인 대화법, 성공적인 인간관계,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한 일종의 성공학 개론서들, 큰 활자에 두꺼운 재질, 게다가 그림까지 정말이지 수십 분이면 읽어재낄 수 있는 책들로 서점의 진열대는 넘쳐난다. 하지만 이렇게 과잉 공급되는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책들 속에서 한 줄 한 줄 음미하면서 오래도록 여운을 맛볼 수 있는 책을 찾을 확률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번역서라면, 원래 쓰여진 언어로서만 전달될 수 있는 느낌을 충분히
 미치 엘봄 지음/ 공경희 옮김   살리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더욱 더 낮아진다.

그래서 서점에 나와 있는 책들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집에 가지고 있던 책들, 예전에 읽었던 책, 오래 전에 만들어진 책들에 더 손이 가게 된다. 몇 해 전 남편이 읽어보라면서 전해 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번역본을 받아들었을 때도,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그런 종류의 책이리라 생각하고 책꽂이에 꽂아 둔 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사실, 너무나 뻔한 이야기일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별로 읽어 줄 마음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왕 읽을 거면 원본으로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서점에서 문고판 영문서를 사서 읽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달리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정말 아름답고 마음에 와 닿아서 오히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게 되었다. 게다가, 난이도라든가, 문체가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이라는 점, 두께가 적당해서 교양과목의 교재로 쓰기에는 무리가 없겠다는 판단이 들어 지난 학기 영어 읽기 교재로 채택했을 때는 사실 학생들에게 조금 버거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수업이 진행되어 가면서 내가 수업 시간을 기다리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수업에 즐겁게 참여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 책과 함께 한 화요일과 목요일이 정말 나에게는 활력소가 되었다.

학업과 취업을 위한 것이 아니면 가치를 두지 않는, 아니 두지 못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나를 돌아보고 가족과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가치 상실의 시대,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 필요도, 여유도, 욕구도 점점 상실해 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우리가 한번쯤은 꼭 돌아봐야 할 질문과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내가 살아가고 있는 하루하루는 나의 선택과 행동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진정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고 정리해 본다면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번역본을 휙 읽고 지나가기보다, 원서를 가지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천천히 음미한다면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수아 통역대학원 한영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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